"파산 비용이 없어 파산 못한다?"

기업의 퇴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법원이 직권으로 화의폐지나 파산선고를 할 수 있도록 법규가 바뀌었으나 재판부는 "사실상의 폐기업"에 대해서도 판결을 미루는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5월 파산법이 개정되면서 직권파산의 경우에는 신문공고 등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했지만 법원이 이에 따르는 예산을 전혀 확보하지 않은데 따른 현상이다.

이처럼 파산선고가 늦춰짐에 따라 <>즉각 파산절차가 이뤄졌다면 채권자의 몫이 될 수 있었던 재산의 훼손 <>관련 서류 유실 <>거래기업의 회계처리 지연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실태=지난해 10월 화의절차가 폐지됐다가 6개월만인 지난달에야 파산이 선고된 두진종합건설 파산관재인 안영모 변호사는 파산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파산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회사를 찾았으나 사무실은 이미 경매로 넘어가 다른 회사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절차 진행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할 직원들도 당연히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더구나 경기 여주에 있는 야적장에서 폐기물처럼 쌓여 있는 경리장부 등 중요 서류를 보고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바로정보통신과 대호요업 등 화의폐지 이후 반년이 지나서야 파산이 선고된 회사들도 사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서울지법 파산부에 따르면 20일 현재 1백16개 화의업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직권폐지 대상이지만 돈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파산에 드는 비용=파산에 따르는 공고 내용은 화의폐지 파산선고 파산종결 등 통상 3∼5회에 이른다.

회당 공고 비용을 80만∼1백20만원으로 잡으면 1개의 회사가 완전히 정리되는데 드는 비용은 3백만∼4백만원선.

여기에다 변호사 비용(3백만원 정도)과 채권자에게 발송되는 송달료,각종 보고서 제작비용까지 포함하면 최소 6백만원 정도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점=파산선고가 지연되면 될수록 채권자 재산 유실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지난 99년9월 화의가 취소되고 지난해 8월 파산이 선고된 동아지기의 경우 화의가 취소된 후 몇몇 직원들이 사무실 건물에 당구장을 차려놓고 영업한 사례까지 있었다.

사무실 임대료가 파산 재단에 있어선 가장 확실한 수입원인데도 챙기지 못한 것이다.

생산시설을 보유한 회사의 경우 파산절차가 바로 진행되지 않아 법적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 기계를 빼돌리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규정=파산법은 직권 파산선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비용을 대도록 정하고 있지만 대법원 내규는 ''파산절차를 통해 비용이 회수될 것으로 예상될 때''에 한해 가지급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파산선고 직전까지 온 기업이라면 ''회수될 비용''이 남아있을리 없다.

결국 파산부가 가지급금은지급금을 신청하는 것은 실제로는 원천봉쇄돼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지급금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어차피 신청을 하더라도 지급되지는 않는다.

대법원 관계자는 "파산법 개정 당시 파산업무 실무자와 상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산 배당이 안됐다"며 내년에는 반영토록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