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도르트문트역에서 북쪽으로 2분정도 걸어가면 왼쪽에 게스트쿼터스란 호텔이 하나 나타난다.

이 호텔은 주변의 고색 짙은 건물들과 잘 조화된 깔끔한 현대식 빌딩이다.

그런데 이 호텔을 안내하는 팜플렛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룸이 하나도 없는 호텔"이라고 되어 있어서다.

호텔에 룸이 전혀 없다면 그게 무슨 호텔인가.

그러나 사실 이 호텔엔 객실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니다.

일반 객실을 뜻하는 룸이 없고 그 대신 모든 객실이 고급 "스위트(suite)"로 돼있다는 얘기다.

스위트란 객실안에 거실이 있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침대방이 있는 구조를 말한다.

이곳은 거실을 비즈니스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놓았으며 별도의 바(bar)도 설치해놓고 있다.

최근 문을 연 이 호텔은 "룸이 하나도 없는 호텔"이란 컨셉트를 먼저 설정하고 이 컨셉트에 맞춰 건물을 짓고 홍보를 했다고 한다.

비즈니스분야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가진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호텔의 전략은 한국의 벤처인들이 눈여겨 봐야 할 부문이 아닌가 한다.

요즘 국내 벤처기업들은 새상품을 개발할 때 오직 "기술과 기능"을 첨단화 하는데만 관심이 쏠려 있다.

하지만 기술과 기능만 첨단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컨셉트도 고급화할 수 있다.

다시말해 <>사회적 지위 <>지성 <>윤리 <>품격 등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부문도 고급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컨셉트는 밑천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데 비해 부가가치는 엄청나게 커진다.

일본의 가방업체인 간잔은 노트북컴퓨터를 넣고 다닐 수 있는 기가 막히게 잘 고안된 가방을 상품화했다.

이것은 얇고 가벼운데다 서류를 부문별로 넣을 수 있는등 기능면에서 완벽했다.

게다가 끈이 주렁주렁 달린 보통 컴퓨터 가방과는 달리 정장차림으로 들고 다니기에 적합했다.

이처럼 품격이 부가되자 백화점에서 날개돋친 듯 팔렸다.

이제 중학생수가 많으니까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가방을 만들자는 컨셉트는 버려야 할 때가 왔다.

지성을 강조하는 "대학원생 가방"도 충분히 유행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다.

벤처기업인 전용가방을 만들면 벤처인보다 벤처인이 되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그 가방을 더 선호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젊다고 다 윤리를 깨는 엽기적인 상품만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선 "스무살"을 대상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광고한 것이 히트치지 않았던가.

<>컴퓨터 <>휴대폰 <>골프 <>여행 <>패션 <>서적 <>소프트웨어패키지 등에는 사회적 지위와 지성을 나타낼 수 있는 벤처상품들이 무수히 잠재해 있다.

한국에서도 룸 없는 호텔처럼 품위를 강조하는 상품을 내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