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1월 미국 뉴욕에서 열렸던 외채만기 협상의 전말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공동 주최한 ''한국경제의 위기와 회복''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발표된 ''한국 금융권 단기부채의 구조조정''(Restructuring Korean Bank''s Short-Term Debts in 1998) 논문이 그것.

당시 외채협상단 일원이었던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당시 재경원 국제금융담당관)과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외채협상의 전과정을 공개한 첫 논문이라는 점에서 회의에 참석한 70여명의 국내외 학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98년 외채만기 협상때 가장 중요했던 사안은 금리결정 문제.

당시 한국이 안고 있던 단기외채는 약 2백40억달러로 연간 금리를 0.01%만 낮춰도 1년에 2백40만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채권단과 협상단이 최종 합의했던 금리수준은 단기부채 연장만기별로 국제기준금리인 리보(런던은행간금리)+2.25%(1년).2.5%(2년)·2.75%(3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측 협상단이 부채조기상환 청구권을 유리하게 얻어낸 결과 2년.3년 만기연장시 한국의 은행들이 실제 부담한 가산금리는 각각 2.31%, 2.18%인 것으로 분석됐다.

협상 당시 적용됐던 가산금리보다 0.19∼0.57%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변양호 국장은 "민간금융기관들이 미리부터 협상에 참여했다면 협상에 소요된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국제 금융체제 개편 과정에서 민간부문 참여를 촉진시킬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협상 과정을 일자별로 소개한다.

◇ 1998년 1월21일 오후 2시 (뉴욕 현지시간) =시티은행 본부 2층에서 첫 외채협상이 시작됐다.

유럽.일본계 은행들의 지지를 받아 JP모건이 제시한 ''국채발행'' 방식이 아닌 ''정부보증''을 통해 외채를 연장한다는 협상단 안이 채택됐다.

외채협상의 골격이 정해졌다.

◇ 23일 오후 2시 =두번째 협상.채권단은 한국에 대한 IMF 긴급지원자금인 SRF(보완준비금융)의 금리(리보+3.5%)를 협상의 기준(benchmark)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98년 1월21일) 잔존만기 4년짜리 산업은행채권 금리가 리보+5.85%였다는 점을 내세워 협상단을 압박했다.

◇ 26일 오전 11시 =세번째 협상은 기자들의 눈을 피해 채권단 자문 법률사무소인 셔먼&스털링 본사에서 이뤄졌다.

우리측 협상단은 외채 만기연장별로 리보+1.4%(1년만기).1.55%(2년).1.7%(3년).1.8%(5년)의 금리안을 공식 제안했다.

가산금리를 2% 이하로 책정한 논리적 근거로 협상단은 당시 한국과 유사한 신용등급이었던 터키와 파키스탄의 1년짜리 협조융자 금리에 적용됐던 가산금리(터키 0.94∼1.25%.파키스탄 1.25%)를 예로 들었다.

채권단은 그러나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며 반발했다.

◇ 27일 오전 9시30분 =네번째 협상.채권단은 리보+2.75%(1년).3.25%(2년).3.5%(3년).3.8%(5년)를 제안했다.

협상단은 리보+1.75%(1년).1.9%(2년).2%(3년).2.15%(5년)를 제시하며 수위조절에 나섰다.

일부 유럽계 은행들은 그러나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는 채권은행뿐 아니라 전세계 2백여개 채권은행들도 납득할 수 있는 금리를 제시하라"며 강력 반발했다.

오후들어 채권단은 리보+2.75%(1년).3%(2년).3.25%(3년)의 수정안을 들고 나왔다.

모두 SRF 금리(리보+3.5%)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단기외채를 5년간 연장하는 것은 한국측 금리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협상단은 리보+1.85%(1년).2%(2년).2.2%(3년)를 제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 28일 오전 10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해 채권단과 협상단 대표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채권단은 리보+2.25%(1년).2.5%(2년).2.75%(3년)를 제시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이상 협상할 수 없다"고 최후 통첩을 보내왔고 우리측 협상단이 이를 수락, 외채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다.

상호간에 약 0.5%포인트씩 양보한 것이었다.

협상단은 대신 단기외채가 중장기 채권으로 전환되고 6개월 후부터는 2년.3년짜리 만기채에 대해 채무자인 한국의 은행들이 벌칙금없이 조기상환할 수 있도록 채권단의 합의를 끌어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