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작가 박범신씨가 8년만에 장편소설을 냈다.

지난 93년 일간신문에 연재하다 절필선언과 함께 중단했던 소설 "외등"(이룸)을 마무리해 출간한 것.

박씨는 "쳐박아뒀던 원고" 1천7백매분량을 지난 겨울 꺼내 7백여매를 솎아내고 3백여매를 새로 써 작품을 완결시켰다.

절필선언 당시 그를 짓누르던 "베스트셀러 작가"란 짐을 이겨내는데 8년이란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곡절 많은 30년간의 현대사를 관통해 온 인물들의 잔인한 사랑,끈질긴 증오,오르가슴보다 더 통절한 죽음이 묵은 활자 속에 감금돼 있었다"며 "그 불쌍한 것들을 마침내 다시 불러내 함께 놀았다"고 말했다.

소설은 ''나(재희)''가 눈에 뒤덮인 채 얼어 죽은 이복오빠 영우의 사망소식을 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영우가 죽은 곳은 사랑하던 혜주가 감금된 병원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장소.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를 나눴던 곳이다.

그들의 피맺힌 사연들은 나의 회상을 통해 한올씩 풀려 나간다.

나의 어린시절,어머니의 재혼으로 생긴 이복오빠 영우,영우의 연인 혜주,혜주를 두고 영우와 질긴 삼각관계를 만드는 부잣집 아들 상규.

그들간 힘의 균형은 대학시절 영우가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되면서 깨진다.

혜주는 영우를 석방하기 위해 상규에게 부탁하고 마음에 없는 결혼까지 한게 된다.

혜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규는 혜주를 학대하고 병원에 감금한다.

영우는 먼발치에서 혜주를 그리다가 자살한다.

상규의 기업도 외환위기와 함께 몰락한다.

작가는 군사정권 시대부터 IMF(국제통화기금)시대에 이르는 현대사를 배경으로 사랑의 원형을 탐구하고 있다.

그는 "세월이 아무리 깊고 멀어도 나의 내밀한 감성에 화인(火印)처럼 찍힌 사랑과 미움의 무늬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