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상의 '골프 비사'] 故 이병철 삼성회장 <2> 프로골퍼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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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병철 삼성회장은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내게 제안을 하셨다.
이회장은 먼저 "한프로,내가 안양에 골프장 만들고 있는거 알고 있지?"하고 물었다.
나는 "예,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삼성이 안양에 골프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회장은 "안양골프장이 곧 오픈할 예정이니 안양으로 와주면 좋겠네.직원들이 아직 골프를 잘 모르니 지도도 하고 나하고 골프도 치고 레슨도 해주면서 함께 지내지"라고 말했다.
일종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당시 서울컨트리클럽 프로로 있던 나는 아무래도 일자리를 바꾸는 일인지라 "회장님,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서울CC에서 10년 넘게 몸을 담고 있었는데 회장님 말씀을 거역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답을 못드리겠습니다.다른 분들과 상의를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회장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는 대우 문제도 여쭈었다.
그러자 이 회장은 "당신이 골프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모든걸 도와주겠네.봉급도 직원들 중에서 제일 많이 주고 골프숍과 골프연습장 운영권도 당신에게 맡기겠다"며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다.
서울CC로 돌아와 당시 이순용 이사장과 남상수 운영위원장에게 안양CC로 가겠다는 말을 했더니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기껏 잘 키워 놓았더니 돈에 눈이 어두워 떠나는 거냐"며 섭섭해 했다.
나는 "서울CC는 나 말고도 박명출 선배프로와 홍덕산 박정웅 김성윤 등 후배프로들이 많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허락을 해달라고 설득했다.
어렵사리 반승락을 받고 67년 7월 안양CC로 옮겼다.
서울CC의 부캐디마스터와 2명의 캐디도 함께 데려갔다.
그때부터 이 회장에게 레슨도 해주면서 직원들에게 골프에 대한 교육을 시켰다.
여자캐디도 1기생 50∼60명을 선발해 가르쳤다.
이 회장의 나에 대한 배려는 아주 각별했다.
PGA선수권이나 한국오픈에서 우승하고 돌아오면 특별보너스를 30만원씩 주셨다.
또 직접 구입하거나 어디서 선물받은 골프채 중 쓰지 않는 것은 골프숍에다 팔아 필요한 데 쓰라고 하셨다.
아시아서킷(현 아시안 PGA투어)에 출전하기 위해 해외에 나가면 부장대우급을 해줘 그 비용을 모두 대주셨다.
일본에서 대회가 열리면 삼성물산 일본지사를 통해 각종 편의를 봐주도록 일일이 챙겨 주셨다.
지금이야 박세리 최경주 김미현 같은 유명선수는 스폰서와 계약을 맺고 외국에서 뛸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이 회장은 아마 국내 최초로 프로골퍼를 후원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너무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해주신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이회장은 먼저 "한프로,내가 안양에 골프장 만들고 있는거 알고 있지?"하고 물었다.
나는 "예,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삼성이 안양에 골프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회장은 "안양골프장이 곧 오픈할 예정이니 안양으로 와주면 좋겠네.직원들이 아직 골프를 잘 모르니 지도도 하고 나하고 골프도 치고 레슨도 해주면서 함께 지내지"라고 말했다.
일종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당시 서울컨트리클럽 프로로 있던 나는 아무래도 일자리를 바꾸는 일인지라 "회장님,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서울CC에서 10년 넘게 몸을 담고 있었는데 회장님 말씀을 거역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답을 못드리겠습니다.다른 분들과 상의를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회장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는 대우 문제도 여쭈었다.
그러자 이 회장은 "당신이 골프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모든걸 도와주겠네.봉급도 직원들 중에서 제일 많이 주고 골프숍과 골프연습장 운영권도 당신에게 맡기겠다"며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다.
서울CC로 돌아와 당시 이순용 이사장과 남상수 운영위원장에게 안양CC로 가겠다는 말을 했더니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기껏 잘 키워 놓았더니 돈에 눈이 어두워 떠나는 거냐"며 섭섭해 했다.
나는 "서울CC는 나 말고도 박명출 선배프로와 홍덕산 박정웅 김성윤 등 후배프로들이 많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허락을 해달라고 설득했다.
어렵사리 반승락을 받고 67년 7월 안양CC로 옮겼다.
서울CC의 부캐디마스터와 2명의 캐디도 함께 데려갔다.
그때부터 이 회장에게 레슨도 해주면서 직원들에게 골프에 대한 교육을 시켰다.
여자캐디도 1기생 50∼60명을 선발해 가르쳤다.
이 회장의 나에 대한 배려는 아주 각별했다.
PGA선수권이나 한국오픈에서 우승하고 돌아오면 특별보너스를 30만원씩 주셨다.
또 직접 구입하거나 어디서 선물받은 골프채 중 쓰지 않는 것은 골프숍에다 팔아 필요한 데 쓰라고 하셨다.
아시아서킷(현 아시안 PGA투어)에 출전하기 위해 해외에 나가면 부장대우급을 해줘 그 비용을 모두 대주셨다.
일본에서 대회가 열리면 삼성물산 일본지사를 통해 각종 편의를 봐주도록 일일이 챙겨 주셨다.
지금이야 박세리 최경주 김미현 같은 유명선수는 스폰서와 계약을 맺고 외국에서 뛸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이 회장은 아마 국내 최초로 프로골퍼를 후원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너무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해주신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