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의 여자 형사들은 범죄자를 잡으러 갈 때에도 권총과 같은 무기를 지니지 않는다.

범죄자의 대부분은 젊은 해커들이어서 검거 현장에서 격투가 벌어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신문하는 방식도 전혀 딴판이다.

확실한 증거자료를 이미 확보했기 때문에 언성을 높이면서 추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평지를 보기 위해서는 험한 산을 넘어야 한다.

증거를 수집하기까지 과정은 고통 그 자체다.

밤낮없이 해킹을 감시해야 하는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한 순간에 중요한 증거 자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풀 겨를도 없다.

이처럼 끈기와 꼼꼼함으로 승부해야 하기 일이기에 여자 형사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한 뒤 강원경찰청에서 전산직 공무원으로 일하다 이곳에 합류한 김미란(30)형사는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다.

한 초등학교의 서버가 해킹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을때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넘겨버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씨의 "감"은 달랐다.

학생들의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김 형사는 집중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결국 3백여개의 국내 서버가 한 해커에 의해 점령당했고 이들이 일시적으로 공격하면 특정 서버는 맥없이 마비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한 뒤 추적을 벌인 결과 네덜란드의 해커가 조정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해커를 검거할 수는 없었지만 큰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문기술연구원으로 재직하다 사이버 수사대원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원한 강혜영(26)형사는 남다른 증거수집 능력을 갖고 있다.

현장에서 붙잡힌 해커가 자신의 범죄를 완강히 부인하자 강 형사는 해커의 컴퓨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해킹을 한 날짜의 모든 기록을 자세히 검색해 현장에서 증거를 들이대자 해커는 꼼짝없이 범죄를 시인하고 말았다.

형사가 되기 전 7년간 프로그래머로 일해온 이소영(29)씨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왔기 때문에 해커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 언어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

한 인터넷 보안회사 연구원들이 무려 80여개 사이트를 집단 해킹한 사건을 파헤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력이 밑바탕이 됐다.

검거된 연구원만 9명이었고 나머지 보안회사 직원들까지 대부분 참고인으로 출석했기 때문에 팀원들과 함께 조사하면서 꼬박 밤을 새워야 했지만 이 형사는 당시의 치열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허정숙(25) 형사는 각종 사이버 범죄의 통계를 내고 다른 부서의 형사들과 공동으로 수사를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필요한 대외 협력 업무를 담당하면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직업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정보화 사회의 "파수꾼"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천재적인 해킹 기법을 구사하는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남다르다.

김미란 형사는 "해커들의 지능과 일반 범죄자의 악랄함이 결합되면 사이버 범죄는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독버섯이 될 수 있다"며 "건전한 정보화 사회를 만드는데 초석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