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3일 안동수 법무장관을 임명 이틀만에 전격 경질한 것은 시간을 끌수록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여권 핵심부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장관 취임사 초고에 ''충성 서약'' ''정권 재창출'' 등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한 것외에도 안 전 장관과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변호사와 여직원의 말이 엇갈려 ''거짓말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지자 여론에 민감한 여권 핵심부가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은 당연하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중권 민주당 대표는 22일 밤 서울 시내 모처에서 ''사건''의 처리방향을 논의했다.

한 실장은 "그냥 차 한 잔하기위해 만났다"고 발뺌했으나 두 사람은 회동에서 문건작성 경위와 안 전 장관 및 측근들의 해명내용, 여론의 동향 등을 분석, 경질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김 대표는 23일 오전 당내외 여론을 종합, 당4역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누가 보더라도 상황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여론"이라며 경질을 최종 건의했고 곧바로 사표수리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물론 임명권자인 김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자진사퇴''란 모양새를 갖추기 했으나,여권 수뇌부가 교체를 결정한후 이 사실을 안 전 장관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여권이 이처럼 후임 장관을 결정하지 않은채 성급히 경질을 결정 한것은 야당의 정치공세도 다분히 염두에 둔 결과로 보인다.

야당이 "정권재창출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충성메모의 내용을 문제삼아 파상공세를 펼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여권으로서는 안 전 장관을 조기에 퇴진시킴으로써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이번 파문의 후유증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다.

벌써 여권 내부에서는 안 전장관을 누가 천거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청와대 참모진의 ''보좌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강한 편이다.

김영근 기자 yg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