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현금흐름 범위 안에서만 투자하려는 일부 기업들의 ''축소지향적'' 경영 행태가 국내 거시경제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LG경제연구원은 25일 ''설비투자의 성장견인력 줄어든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거시경제 전체 차원에서 과소투자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계속 투자를 줄여나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의 투자급감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면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부채를 줄여 건실한 대차대조표를 만들려는 노력이 투자 축소로 이어져 거시경제 전체의 불황을 가져옴)이 발생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LG연구원은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면서 기업들이 경영전략을 ''매출극대화''에서 ''부채극소화''로 바꿈에 따라 이런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축소지향형 경영행태=외환위기 이후 ''차입 경영''의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불확실한 수익성보다는 생존을 위한 안정성을 우선시하게 됐다.

금융권 신용경색으로 외부 차입도 쉽지 않을 뿐더러 부채비율 축소 요구 등 정부의 재무구조 개선 정책도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했다.

결국 대다수 기업들은 현금흐름 범위 안에서 투자하려는 ''축소지향적''성향을 보이게 된 것.설령 투자 여력이 있더라도 향후 경제 전망이 불확실해 섣불리 투자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설비투자 자금조달 패턴 변화=외환위기 이전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설비투자 자금을 외부차입으로 조달했었다.

전 산업의 설비투자 자금중 내부자금 비중은 지난 90∼97년중 31.3%에 불과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내부자금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 작년엔 74.6%에 달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이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차입금(부채총액에서 주식발행·직접투자유치·출자지분 등을 통해 조달한 무이자부채를 뺀 것)은 지난 99년 1·4분기말 6백62조원에서 작년말 6백19조원으로 줄었다.

30대 기업집단의 이자부 부채도 지난 97년 말 1백39조3천억원에서 작년말 1백22조3천억원으로 17조원 감소했다.

유상증자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등으로 부채를 줄였을 수도 있지만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을 설비투자 자금으로 활용하지 않고 빚 갚는 데 사용한 측면도 상당부분 있다는 말이다.

◇경기 회복 지연 우려=기업의 부채 극소화 노력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전체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최악의 선택''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소투자 우려까지 있는 상황에서 투자 감소가 계속되면 금리인하,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가 제아무리 경기부양책을 써도 기업의 자금수요는 늘지 않아 정책의 실효성이 나타나지 않는 극한 상태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것.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기업의 투자심리를 호전시킬 수 있는 각종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며 "일관성있는 구조조정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고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각종 기업관련 규제 완화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