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수천만명이 비즈니스와 관광 목적으로 드나드는 영국 런던의 히드로공항.

일등석과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을 위한 패스트트랙 레인(신속통과 창구)에 선 사람들은 일단 입국이 수월할 거라고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출입국 공무원 앞에 서는 순간 말끔히 사라진다.

공무원은 마치 범죄자 대하듯 꼬치꼬치 입국 목적을 묻는다.

불쾌감은 호텔까지 이어진다.

엄청난 숙박비를 지불하는데도 투숙절차는 무척 까다롭다.

오만하기 이를데 없다.

그레이트 러셀가에 자리잡은 대영박물관.

94개에 이르는 전시실에는 동서고금의 문명이 질서정연하게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부터 20세기초 매킨토시의 탁상시계에 이르기까지 수백만점의 유물이 잘 보존돼 있다.

67번째 전시실은 한국관.

유물 10여점과 기둥에 금이 간 기와집이 초라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관을 제외하면 각 전시실은 대체로 장엄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박물관은 영국의 역사가 아니다.

약탈의 역사다.

총포와 화약,조선술로 패권을 잡은뒤 빼앗아온 다른 민족들의 역사다.

그렇지만 오만과 약탈이 영국의 전부가 아닌 것은 물론이다.

런던 시내를 벗어나 2시간 거리.

대학촌인 케임브리지시가 자리잡고 있다.

영국의 현재와 미래를 담보하는 곳이다.

세번의 경고로 영원한 퇴학을 당하지 않기 위해 대학촌의 34개 칼리지(college) 학생들은 밤잠을 잊고 있었다.

도시를 뒤덮은 잔디밭 곳곳에서 독서하는 대학생과 방과후 축구를 즐기는 고등학생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복지수준도 부러울 정도.

케임브리지시 밤거리를 헤매던 켈리란 아가씨는 애완견 두마리를 데리고 거지노릇을 하면서도 생활에 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관광경영학을 전공하는 한국 유학생 김성호(35)씨도 "노모가 맹장염이 생겨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모든 게 무료"라고 말했다.

지는 해로 불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자존심의 나라 영국.

두 얼굴의 영국은 배워야 할 점과 배워선 안될 점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런던=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