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채무에 대한 논란이 끝이 없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국가재정이 건실한가에 대한 국민적 우려 때문이고,다른 하나는 현 정부가 재정부실을 초래한 주범인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관심은 두번째 이유에서지만,학자들은 첫번째 이유에서 문제에 접근한다.

국가채무는 중장기적인 재정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다.

재정 건전성은 수입과 지출에 대한 전망,국유재산의 규모,경제성장률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 곤란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국가채무 규모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채무를 국제기준에 맞게 계산해야 한다.

국제기준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통계지침을 뜻한다.

IMF는 현재 1986년에 만들었던 재정통계지침을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엔 시안을 공표하기도 했다.

이 개정지침(시안)을 감안할 때 정부가 채택하는 국가채무 계산은 중대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연금채무,우발채무,보증채무의 문제가 아니다.

개정지침은 86년판에 비해 두가지 중요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첫째,발생주의 원칙에 따라 기업재무제표와 같은 수준의 재정보고서를 정부에 요구한다.

둘째,모호했던 재정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두번째 항목이다.

재정이란 정부가 무료 또는 경제성없는 가격으로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는 활동을 말한다.

정부는 때로 기업활동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이는 제외된다.

중앙은행의 금융활동 역시 제외된다.

IMF개정지침은 재화와 용역을 민간에 제공하지만 그 대가를 민간으로부터 전부 수령하지 않고 강제부담금 등으로 조성된 자금을 사용하는 일반정부(general government)만 재정의 범위에 포함시킨다.

일반정부는 기관단위(institutional unit)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개별 기관의 기능,재원의 성격,의사결정자에 대한 임명과정 등을 판단해 그것이 정부의 성격에 부합하면 일반정부로 본다.

회계단위나 법률적 형태,구성원의 법적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회계단위 기준으로 파악되는 재정의 범위는 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재정의 범위와 일치해야 한다.

만약 재정에 포함되는 회계단위들이 일반정부 기관을 망라하지 못한다면 회계단위는 재정의 범위를 파악하는 기준으로 적절하지 않다.

IMF는 이러한 사실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일반정부에 대한 이 기준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첫째,우리나라의 정부산하기관 대부분이 일반정부에 포함될 수 있다.

영국에서 NDPB(Non-Departmental Public Bodies)는 구성원이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정부에 포함된다.

둘째,공기업은 원가보상적 가격을 받고 파산위험이 있는 기업활동에만 해당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투자기관 중 일부는 일반정부에 포함돼야 한다.

셋째,금융공기업은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과 운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도 일반정부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일반회계,특별회계,공공기금,기타기금은 일반정부의 범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많은 정부산하기관들이 있고,이들의 예산 규모도 상당해 우려할 만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

정부산하기관은 협회,조합을 망라하는 개념이고 또 산하기관 대부분이 출연금을 수령하기 때문에 총액규모는 과장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예산 순계규모와 부채규모(정의상 국가채무)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정부를 기관단위로 정의하면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기관별 재무제표(예컨대 건설교통부의 대차대조표)가 작성돼 성과책임을 물을 수 있다.

또 별도의 주머니가 정부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능성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정의 범위가 기관단위로 파악될 때 비로소 재정이 그 실제 성격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과연 정부는 산하기관의 채무를 나몰라라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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