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 워싱턴 특파원 >

21세기에 들어선 미국이 ''일부다처(一夫多妻)''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다섯 부인과 29명의 자녀를 거느린 톰 그린이라는 다처주의자에게 법정이 유죄를 인정한데서 비롯됐다.

유타주 주압(Juab) 카운티 검사인 데이비드 리비트가 그린을 중혼(重婚), 자녀부양 해태, 어린이 강간 혐의로 기소한데 대해 지난 21일 유타 배심원들이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그린의 다섯 부인들 모두 "우리는 신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우리는 종교적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고 증언했다.

리비트 검사 또한 "나도 문제삼지 않으려 했다.다처주의는 모르몬(Mormon)교 지도자들이 인정하는 것이었다.나의 학우들과 증조부도 다처주의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린은 13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이를 강간, 임신시키고 부인으로 맞아 아동교육의 기회를 박탈했을 뿐 아니라 주정부로부터 양육비를 받아낸 형사범일 뿐이다.우리가 이런 사람을 기소할 수 없다면 검사직은 필요없는 직업이다"는 게 리비트 검사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린과 그 가족들은 그들이 ''NBC 데이트라인'' 등 TV에 나가 다처주의를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2002년 동계올림픽을 앞둔 솔트 레이크 시티를 곤혹스럽게 만든 데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평범한 가정이다.다만 숫자가 좀 많을 뿐이다.그런데도 그들은 우리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는 게 그린의 주장이다.

유타주에 본거지를 둔 모르몬교에 다처주의는 1840년대부터 보편화된 단면이었다.

모르몬 창시자인 조지프 스미스는 물론 교회 최고 지도자인 브리검 영도 다처주의자였다.

이는 구약 선지자들이 여러 부인을 두었던 성서의 기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854년 노예제도와 다처주의를 ''쌍둥이 야만행위''로 규정한 미 공화당은 1862년 이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모르몬측은 즉시 "헌법이 허용하는 종교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라며 항거했다.

브리검 영의 개인비서는 이를 법정공방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1879년 미 대법원은 공화당편을 들어주었다.

이같은 법정패배와 연방정부의 압력에 굴복, 모르몬 스스로도 1890년 다처주의를 부인하기에 이른다.

유타주 헌법도 중혼을 금지시켜 버렸다.

그러자 다처주의자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결국 법 철퇴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에는 무려 3만명에 이르는 다처주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루론 제프스라는 지도자를 정점으로 6천명이 함께 군락을 이루며 사는 다처주의 촌(村)도 있다는 소식이다.

대법원이 중혼을 금지(1879년)한 지 1백20여년이 흘렀다.

사람들의 인식과 생활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미국 대법원은 "종교적 ''신념''을 제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행위''까지 방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다처주의자들의 항변은 단순하다.

"그렇다면 호모나 레스비언은 무엇인가"고 묻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 법원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평범한 농촌생활(plain life)만을 고집하며 8학년이상의 교육은 받지 않으려는 아미시(Amish·재침례교인)교 아동들을 강제로 교육토록 한 미 정부의 행정명령은 위헌"이라는 판결(1972년)을 내린 적이 있다.

이는 ''교육 안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으로서 다처주의자들이 저항의 근거로 이용할 수 있는 (법정 결정들간의) 내부모순임에 틀림없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처주의자 그린은 유죄를 인정치 않고 즉시 상급법원에 항소했다.

그가 상급법원에서 항변을 개진하는 동안 미국사람들은 종교적 신념과 주변 시선간의 갈등을 놓고 더욱 더 뜨거운 논쟁을 벌일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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