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는 레밍이라는 쥐목(目)에 속하는 동물이 많이 산다. 이들은 가끔 이해할 수없는 집단 자살소동을 벌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런데 뜻밖에 동물학자가 아닌 식물학자들이 그 원인을 밝혀냈다. 레밍이 먹는 풀들은 유난히 번식률이 강한 레밍의 수가 늘어나 생존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 대비책으로 스스로 중화액을 만들어 레밍의 소화액을 중화시켜 버린다. 영양섭취를 못하고 계속 풀만 뜯어먹은 레밍은 체력이 떨어져 환각을 안고 결국 물속으로 뛰어들고 만다는 것이다. 영국 학술원 회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쓴 '식물의 사생활'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는 이 사례를 통해 풀들도 집단적인 대화를 하고 적에게 공동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와세다대 요시우키 박사팀은 95년 나무도 바이오리듬을 이용해 다른 나무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실험결과를 미국 '뉴사이언티스트'지에 발표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우연의 일치 아니면 비슷한 환경 때문일 것"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식물도 의사소통을 한다는 연구는 이밖에도 여러 각도에서 진행돼 왔으나 아직 전반적인 학계의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데이비드 베어링 연구팀이 '네이처'지에 식물도 성장할때 주변의 경험많은 선배에게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는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는 외신보도는 자못 관심을 끈다. 식물들끼리 의사전달을 한다는 뜻에서 '녹색언어'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식물도 감정이 있다고 믿고 미모사에 나팔소리를 들려주었던 찰스 다윈의 생각은 적중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수확을 늘리는 식물전용 '그린 음악'이 유용하게 쓰이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식충식물을 보면 식물의 지능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될지 아리송해진다. 동물은 고등생물, 식물은 하등생물이라는 기존의 논리는 자연환경보호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녹색언어'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면 식물을 하찮은 것으로 얕잡아보는 어줍잖은 관념의 틀도 바뀌어 겸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삼라만상은 하나의 유기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