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월이다. 보통 여름철에는 시장참여자들이 장기간 휴가를 떠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엷어지는 현상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이럴 때 국제금융시장은 에너지가 약화돼 조그마한 쏠림 현상과 불안요인만 나타나도 쉽게 흐트러진다. 1990년대초 유럽통화위기와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도 여름철에 시작된 점이 이같은 사실을 입증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올 여름철에는 어떤 요인들이 국제금융시장을 불안상태로 몰고 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일본경제 위기설'을 경계해야 한다. 올 1.4분기 마이너스 0.5%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일본경제는 7월 총선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정치적 기반을 굳히지 못할 때에는 개혁정책 후퇴가 불가피하다. 또 오는 9월부터 유가증권 평가손을 그대로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시가평가 회계제도를 실시하는 것도 일본경제 위기설과 관련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때 주가와 채권가격이 떠받쳐주지 못할 경우 금융시스템의 마비가 올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물론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경제위기설이 나돌더라도 시장참여자들의 예비적인 기능과 시장의 자정적인 기능으로 인해 실제로 위기가 구체화된 경우가 별로 없고 가능성도 낮다. 그렇더라도 만에 하나 일본경제 위기설이 가시화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경제에는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경제 위기설과 함께 인도네시아 터키 아르헨티나 등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국가로부터 올 여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이들 국가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이들 국가의 정치적 일정과 취약한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경제와 금융시장이 쉽게 안정을 되찾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갈수록 외화유동성이 악화되고 있어 헤지펀드를 비롯한 국제투기세력으로부터 평가절하에 대한 기대심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유로화 가치의 향방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동안 견실한 성장세를 보였던 유럽경제가 올들어서는 둔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로랜드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 경제가 부진한 것이 눈에 띈다.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불행히도 물가마저 유럽중앙은행(ECB)이 세운 목표치를 훨씬 상회하고 있는 상태다. 전통적으로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ECB와 각 회원국 중앙은행의 입장을 감안할 때 경기부양과 인플레 안정을 놓고 정책적으로 부조화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국제투기세력들이 개입할 소지가 높다. 최근 들어 자국의 이익만 강조하는 경제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올 여름철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지난 1월20일 출범한 부시 정부의 '강한 미국'을 표방한 대외정책으로 당면한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현안을 놓고 선진국간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는 어느 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 더욱이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들이 보유한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쉽게 인접국으로 전염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근 들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외화유동성 위기는 거의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5월말 현재 외환보유고가 9백36억달러에 달하고 있고 수출입규모가 축소되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경상거래 측면에서는 흑자기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시스템 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경제시스템 안정을 위한 구조조정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데다 올해말까지 회사채 상환물량을 감안할 때 개별 기업과 금융기관 차원에서 유동성 위기에 몰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름철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가 차원에서 위기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점검하고 기업과 국민들은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