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금융감독위원회를 찾는 외국 투자회사 관계자들의 발길이 부쩍 잦다. 그 중엔 세계적인 투자회사인 피델리티나 푸르덴셜 관계자의 얼굴도 보인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한국에서 증권사나 투신사를 차려 본격적으로 판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노림수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한국의 증권사나 투신사의 자산운용능력이 신통찮아 금융회사와 고객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다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금융 재테크시장이 앞으로 엄청나게 부풀 것이란 대목이다. 한국의 증권 투신업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나 다름없다. 증시가 활화산처럼 폭발하던 1999년 주식형 펀드로 불리는 간접투자상품에 시중의 여유자금이 대이동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장이 시들자 반토막을 내는 것은 아마추어나 프로나 마찬가지였다. 올들어 증시가 조금씩 깨어나고 있지만 국내기관에 돈을 맡기려는 사람이 적다. 국내기관의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의 거대 투자회사는 이런 허점을 노리고 있다. 시중 부동자금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관찰이 있다. 지난해만 해도 1백조원으로 추산되던 부동자금 규모가 갈수록 늘어난다. 얼마전엔 2백조원으로 어림되더니 요즘엔 3백조원으로 추산하는 사람도 있다. 뭉칫돈을 끌어다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들이는 곳이 기업인데 그런 기업이 투자에 대해 흥미를 잃고 있으니 부동자금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저물가 저금리 저성장이란 3저(低) 경제가 지속될 수록 여유자금은 늘어나고 활짝 꽃을 피울 곳은 금융 재테크 시장임이 자명해진다. 세계 금융시장을 주물러 본 경험이 있고 '돈심'이 추구하는 것이 수익률이란 것을 아는 선수들이 이 대목을 놓칠리 없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아직도 '투자란 자기책임 아래'라는 안이한 캐치프레이즈에 머물고 있다. 주식투자란 이런 저런 것이고,주식투자로 돈을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돈을 벌자면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 등을 친절하게 가르치는 증권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증권사 지점 옆에 투자기법을 가르치는 사설학원이 생겨나는 판이다. 투신사나 뮤추얼펀드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입사 4~5년 밖에 안되는 펀드매니저 한 사람이 맡고 있는 펀드가 30여개에 이르는 회사도 있다. 정성을 다하는 고객자산 관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외국의 대형 투자회사들이 몰려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최근 씨티은행에서 투자원금을 보장해주는 펀드를 판매한 적이 있다. 투자원금을 모두 채권에 투자할 때 발생하게 될 이자소득 만큼을 미리 떼어내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다.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한달 사이에 무려 2천억원이란 거금이 몰려들었다. 외국의 대형 투자회사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선수 중의 선수다. 돈이 좇는 것이 수익성과 안정성이고 보면 그들이 한국에 진출한 뒤 여유자금이 어디로 몰려갈지는 불보듯 뻔하다. 금감위 관계자의 입에서조차 "선수들이 몰려오면 아마도 한국의 몇몇 회사는 문을 닫게 될 것"이란 얘기를 한다. 그것을 염려하고 있는 금감위가 이런 저런 핑계로 외국사의 국내진출을 늦추려 하고 대응책도 만들고 있다. 선도증권사를 키운다든지,증권사를 투자은행으로 만들겠다는 것 등이 그런 노력의 하나다. 선수들이 몰려오고 '돈심'이 그 쪽으로 기운 뒤엔 이미 늦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앉은 돈심을 추스르고 고객과의 거리 좁히기를 서둘러야 한다. 살아남는 방법은 그 길밖에 없다. hu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