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안양골프장을 만들면서 골프에 더 깊숙이 빠져들었다.

안양골프장의 페어웨이 잔디인 ''중지(中芝)''가 이 회장 부자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안양골프장은 처음에 한국산 금잔디를 심었다.

이 회장은 코스를 돌면서 잔디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러나 금잔디는 아무래도 성장이 잘 안됐다.

이 회장은 일본과 미국의 잔디를 가져와 국내의 차가운 날씨와 장마에 잘 견딜 수 있는 잔디를 개발토록 했다.

수원의 삼성전자단지 옆에 잔디를 연구하는 실험실까지 뒀다.

그 잔디개발 과정은 이건희 현 삼성 회장이 진두지휘했다.

이건희 회장은 ''그린 박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여기서 개발해 낸 게 중지로 지금 많은 국내 골프장에 식재돼 있다.

안양골프장은 지은 지 4년 뒤에 중지로 바꿔심었다.

또 여름에 잘 볼 수 있는 백일홍을 심었다가 잘 자라지 못하자 수선화로 바꾸기도 했다.

나무도 처음에는 모양이 별로 없는 소나무나 잣나무 등 속성수를 그냥 사서 심었다.

나중에 이를 교체하기 위해 베어낸 나무만 5천그루가 넘었다.

안양골프장 나무들은 전국 각지에서 귀한 나무만 골라 사서 심은 것들이다.

오죽하면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우정힐스골프장을 만들면서 "지금은 어디에서도 안양골프장 같은 나무를 구할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기르는 데도 자식 키우듯이 했다.

한국비료의 주인이었던 이 회장은 안양골프장에 쓸 퇴비를 구하기 위해 연구를 하다 김장철에 시장에서 팔고 난 뒤 버려진 야채들을 끌어다 모아 쓰기도 했다.

이 회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 벙커가 있으면 위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아예 없애버리기도 했다.

이 회장 서가에는 일본에서 온 골프관련 서적이 많았다.

당시 도쿄지사 책임자는 일본에서 나오는 골프관련 책이나 골프채 등을 모두 구입해 이 회장에게 보냈다.

이 회장은 이를 통해 골프의 흐름을 포착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사업에 임할 때 근본부터 연구를 해서 뛰어들었는데,골프도 그랬다.

이러다보니 안양골프장은 국내 골프장 발전사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에게 골프는 사업의 작은 부분에 불과했지만 골프계에 끼친 공로는 컸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