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계속되고 있는 북한 상선들의 제주해협 및 북방한계선(NLL) 무단통과 문제가 파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확한 정보와 확고한 전략을 토대로 단호한 초기대응을 하지 못한데서부터 유사사태 재발시 강력대처하겠다는 공언에도 불구,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보듯 정부와 군 당국은 속만 끓이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의문은 청진2호(1만3천t급) 령군봉호(6천700t급) 백마강호(2천700t급) 등 북한상선 3척이 지난 2일과 3일 각각 우리 영해를 침범, 제주해협을 통과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군 당국이 정전규칙에 따라 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합참 및 해군 관계자들은 "북한 선박이 쌀과 소금 등 생필품을 실은데다 우리 해군의 통신검문(무선교신)에 순순히 응하고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아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3일 오후 청와대에서 긴급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는 이를 추인했다. NSC 상임위는 회의가 끝난 뒤 국방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금번에 한해 영해통과를 허용했다"며 향후 북한의 사전통보 및 허가요청을 요구한 뒤 "재발시 우리 정부는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두번째 지적은 '무해통항지역'인 제주해협을 일단 통과한 북한 상선 청진2호가 4일 군사작전 지역인 우리 관할지역을 거쳐 서해 NLL을 넘는 것을 허용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작전부대인 해군은 청진2호가 서해 NLL쪽으로 진입할 것에 대비,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준비했으나 NSC 상임위 결정에 따라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4일 청진2호가 NLL을 통과한 뒤에야 공개가 되기는 했지만 NSC 상임위는 3일 회의에서 이미 이번에 한해 NLL 통과를 묵인키로 하는 한편, 북한의 사전통보 및 허가요청이 있을 경우 '사안에 따라' 북한 상선의 NLL 항해를 허용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청진2호가 거쳐 간 NLL 항로는 중국을 포함한 제3국 민간선박의 경우 사전통보나 허가요청에 따라 우리 정부가 NLL 통과를 허용해온 점을 감안해 북한이 이같은 전제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남북화해협력 차원에서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남북의 혈맥으로 평가받는 경의선 연결 및 도로 개설 작업이 중단된 상황에서 남북 해상 수송로의 개설은 비용 및 시간 절감이라는 경제적 효과 외에도 사실상 '올-스톱'된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될 수도 있어 나름대로 의미 있는 판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 해상 수송로의 개설이라는 획기적 조치는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남북 당국자 회담 등을 통해 착실히 추진해야 하는 사안인데도 불구, NSC 상임위가지나치게 졸속으로 처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북한 상선이 유사한 행동을 되풀이할 것임을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비난여론에 떼밀려 '재발시 강경대응' 방침을 미봉책으로 발표한 정부측 자세는 문제로 꼽힌다. 전날 NSC 상임위는 국방부 대변인 성명으로 "이번에 한해 영해 통과를 허용하고, 사전통보 및 허가요청이 없이 (유사사태) 재발시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이 이날 국방위 답변을 통해 "향후 그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경우 교전규칙 뿐아니라 다른 군사적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로 그 시점에 또 다른 북한 상선 대홍단호가 제주해협에 진입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덩치가 큰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 통과를 고수할 경우 해군이나 해경 고속정으로는 막기가 쉽지 않은데다 이제와서 정선과 경고사격 등 강경 조치를 취할 경우 대외적으로 민간선박에 대한 '과잉대응'이라는 비난을 살 우려가 있어 결과적으로 부담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작전부대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강력히 대처하자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으나 상부에서는 일부의 비난여론이 강하지만 '무리할 필요없다'는 뜻을 밝혔다는 후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김귀근 기자 sknk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