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자 없는 산소가 많습니다. 길지(吉地)니, 발복(發福)이니, 여기서는 그런 걸 논의하는 것조차 실례입니다….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이가 울고 있나, 그 사람을 보고 있는 내가 저밋거린다. 나는 지금 '최창조의 풍수기행'을 보고 있다. 죽음이란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돌연히 세상을 떠나야 했던 억울한 사람들의 혼이 있는 곳, 한국전쟁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국립현충원 사병묘역이다. 우리가 까맣게 잃어버린 그 때 그 시간들이 땅을 느끼고,물을 느끼고, 바람을 느끼는 그의 예민한 감각들을 깨우는 모양이다. 나는 영혼을 믿는다. 따뜻한 영혼, 슬픈 영혼, 상처받은 영혼, 무심해진 영혼…. 그런 영혼을 믿는다.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이 여기에 있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늙어가고,또 소멸돼 가는 것은 새로운 것을 남기는 법이니, 삶 속에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있어 산 자가 죽은 자를 추억한 것은 아닐는지. 그렇지만 그들은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 소멸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 죽음이 부담스러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상처받은 영혼은 위로가 필요하다. 무욕(無慾)한 마음에 위로를 주는 곳, 국립현충원에서 가장 양명한 땅은 박정희 대통령의 묘지가 아니란다. '그런 곳이 있었나' 하고 놀라게 되는 곳이 바로 창빈 안씨의 묘다. 바느질 나인에서 시작해 중종의 후궁이 되고 마침내 선조의 할머니가 된 창빈 안씨. 원래 동작동 국립묘지는 창빈 안씨의 묘역이 있는 곳이었다. 최창조씨가 말한다. 양명한 땅이라고. 저기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억울한 가족들이 이 자리에서 위로를 받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설명을 들어 그런지, 화면이 아늑하고 따뜻해 보인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창빈 안씨의 묘는 높은 신분의 묘라는 위엄보다는 억울한 사람들을 품을 만큼 넉넉해 보였다. 아, 저기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립현충원, 사(私)를 버리고 우리를 위해 살다간 사람들을 추억하는 곳이다. 사를 버린 사람들의 주검은 차별이 없지만, 장례식은 차별이 있어 계급에 따라 묘의 크기가 다르다. 뼈만 묻은 사람, 이름만 있는 사람이 마음속에서 웅웅거린다면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넓게 차지한 장군 묘역은 현대판 계급을 실감케 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이 아니구나, 죽어서도 아픈 영혼이 있고 죽어서도 위용을 보이는 영혼이 있구나. 아, 죽음조차 공평하지 못한 슬픈 땅이구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 그건 순전히 내 주관일 뿐 죽음이 그렇게 차이가 나야만 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으리라. 장군 묘역을 돌아보니 아는 이름이 나온다. 그 이름은 친일파 이름이었다. 일제시대 때는 친일에, 해방 후에는 '반공'을 내세워 무고한 민족주의자들을 학살하다 암살당한 그 이름을 어찌 이 땅, 사(私)를 버린 땅에서 확인해야 하는가. 안에서부터 뭔가가 아우성친다. 한번 장군이면 영원한 장군인가. 장군들은 죽으면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된다고 한다. 인권을 탄압하고 부패에 연루된 적이 있어도 장군이면 누구나…. 글쎄, 왜 그래야 할까. 이순신 장군처럼 그렇게, 무욕하게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장군이 국립묘지에 누워 있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양명해질까. 우리가 아는 순국열사들을 그 자리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울까. 전사했다든가, 순국한 장군들의 자리는 세월의 더께 없이도 편하게 찾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전사했거나 순국한 적이 없고, 더구나 한번도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는 그런 장군에게까지 국립묘지에 자리를 내줘야 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아,그리고 또하나 기억나는게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 친일파가 끼여 있다. 독립운동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심사하는 자리에 친일파가 끼여 있었단다. 그로 인해 엉뚱한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둔갑해서 애국지사 묘역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은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아직도 흐르고 있다는 증거다. 이 참에 이를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애국지사 묘역을 양명하게 만들어 주는 길이 아닐까. JA1405@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