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8일자) 힘의 논리 앞세운 철강수입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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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기업 성향의 부시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철강수입규제 움직임은 어느정도 예상돼온 일이지만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외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긴급 수입제한조치(통상법 201조)발동을 위한 실태조사를 지시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전격적이고 강력한 조치란 점에서 충격이 크다.
미 철강업계의 201조 발동요구를 번번이 거부했던 클린턴 전대통령과는 달리 부시 대통령이,그것도 무역대표부나 의회를 통하지도 않은 채 자신이 직접 극약처방을 내렸다는 것은 통상문제에 임하는 그의 태도가 얼마나 거친 지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오늘날 세계 철강업계가 공급과잉의 몸살을 앓게 된데는 후발국가들의 설비확장이 부분적인 요인이 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철강업체들이 설비를 유지하려고 무리수를 두는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따라서 당면한 철강공급과잉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제분쟁의 소지가 많은 세이프가드 발동보다는 최근 거론돼온 '세계 철강생산 감축협약'의 조속한 추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미국이 갑자기 이 협약 추진을 포기하고 201조 발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미국도 과잉생산에 따른 일부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때문으로 짐작되지만 경쟁력 없는 설비는 과감히 폐기하는 것이 공급과잉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한국을 비롯한 대미 철강수출국들은 앞으로 8∼10개월 동안 '힘의 논리'를 앞세운 미국과 힘겨운 협상을 벌여야 할 입장이다.
아직 변수가 있긴 하지만 미국이 201조를 발동,97년 이전 3년간 기준으로 수입쿼터를 결정할 경우 한국의 대미 철강수출은 지난해 대비 42%(1백만톤)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고 보면 그 충격을 짐작할만 하다.
마침 오는 24일부터 워싱턴에서는 한·미 통상장관회담이 열린다고 하니 우리의 입장을 이해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가별로 과잉설비와 보조금의 개념이 다를 수 있고 값싼 수입철강 의존도가 높은 미국의 자동차 전자 기계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에 한국산 철강이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한편으론 사태가 악화될 경우에 대비, 일본 중국 등 다른 철강수출국들과 공동으로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의 국제공조체제 구축에도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