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초 정보통신부는 "IT(정보기술)강국 e코리아 건설"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도 내놓았다. 곧이어 산업자원부와 전경련도 이 슬로건을 채택했다. 이 바람에 "e코리아 건설"은 국가적인 과제가 됐고 산업계에 "e코리아 붐"이 일고 있다. 그런데 정보통신부보다 먼저 "e코리아"란 용어를 쓰기 시작한 기업이 있다. 미국 컴퓨터업체인 컴팩코리아다. 컴팩은 지난해 5월부터 "e코리아"란 슬로건이 나오는 TV광고를 방영했다. 유엔빌딩에서 열리는 가상총회에서 한국이 사이버유엔 초대 회장국으로 선정되는 모습이 담긴 광고였다. 컴팩은 이 광고를 내보내면서 "e코리아 파트너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후 9백여개 중소기업을 "파트너"로 선정,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컴팩코리아와 같이 외국계 IT기업들이 "e코리아 건설의 동반자"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이전을 기피하며 이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됐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IT 벤처기업들에 투자한 뒤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하고 협력업체에 설비를 지원해 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윈윈(win-win) 전략"을 펼침으로써 IT 벤처기업들과 공생을 꾀하고 있다. 외국계 IT 기업들이 달라진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이 "IT 테스트베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IT 신기술을 시험해 보기에 한국이 더할나위없이 좋은 시장으로 인식되면서 외국계 기업들이 동반자 입장에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초고속인터넷에 관한한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 휴대폰 가입률도 약 60%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더구나 IT 벤처기업들의 역동적인 모습은 외국계 IT 기업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국 IT 기업에 대한 외국계 기업들의 투자는 최근 1,2년새 그야말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컴팩 인텔 휴렛팩커드(HP) 마이크로소프트(MS)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은 아예 펀드를 만들어 IT 벤처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인텔 HP MS는 최근 공동으로 2천만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으며 13개 기업을 골라 1백억여원을 투자키로 했다. 재일동포 손정의씨의 소프트뱅크는 초고속인터넷업체인 두루넷에 투자, 주요 주주가 됐다. 마케팅이나 기술개발 측면에서 협력하기 위해 제휴하는 사례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오라클 컴팩 IBM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은 제휴협력사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글로벌네트워크를 활용한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이들 업체간 글로벌 커뮤니티를 구성, 국제 교류도 지원하고 있다. 국내 협력업체의 해외진출시 해당국가의 마케팅 담당자를 통해 현지화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MS가 삼성SDS TG인포넷 등의 중국진출을 위해 중국MS의 마케팅 담당자들의 지원을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따지고 보면 외국계 IT업체들은 오래전부터 한국 기업들의 정보화를 선도해 왔다. 외국 IT 기업중 맨먼저 한국에 진출한 한국IBM은 지난 1967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처음으로 컴퓨터시스템을 공급했다. 이후 국내에 SI(시스템 통합) 업체가 생겨난 80년대 중반까지 외국계 IT업체들은 기업과 정부의 정보화를 이끌어 왔고 90년대에는 SAP 오라클 등이 기업 정보화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공급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외국계 IT 기업들은 한국기업들을 단순히 고객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 이들을 "e코리아 건설의 동반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