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교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시기를 맞아 노동계의 파업사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효성 울산공장에 대한 강제진압으로 화섬업계와 화학업계의 연쇄파업이 우려되고 있다. 또 민주노총이 오는 12일 2백여개 사업장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파업은 작년보다 그 횟수는 적지만 강도는 높아지고 파급효과가 큰 자동차 항공 화학 금속 등의 사업장이 관련돼 있다. 더 큰 문제는 노사간에 쟁점이 되고 있는 현안들이 현 노사관계제도하에서 대화를 통해 풀릴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는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사간 임금이나 근로조건은 주로 기업단위의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해 왔는데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수준의 노사현안을 다룰 수 있는 노사정위원회가 설치됐다. 최근 국내 노사관계의 문제는 이 두 수준의 노사관계제도가 노사간 주요 쟁점이 되는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비정규직 증대로 인한 고용불안정,노동시간단축,모성보호 등에 대한 해결책을 못 내고 있다는데 있다. 기업수준의 단체교섭은 전통적으로 임금이나 기본적인 근로조건의 결정에 주력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노동조합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기업단위의 노조들은 산별노조연맹이나 전국연맹에 공론화와 주도적인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반대로 기업의 사용자들은 권위적인 인식에 기초해 이 이슈들의 결정은 노조가 간섭할 수 없는 사용자의 고유권한으로 간주하고 있다. 동시에 노사정위원회도 이러한 노사간 쟁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그 주요 원인은 이 기구를 각자의 입지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용하려는 정부 사용자 노동조합의 근시안적인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앞으로 국내의 경제는 과거 개발기와는 달리 낮은 성장을 하면서 끊임없는 구조조정의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이 단계에 접어든 화학섬유나 자동차산업 노사분규의 최근 쟁점은 그 추세를 예측하게 한다. 따라서 과거 경제개발기처럼 높은 성장에 따른 임금이나 근로조건의 개선에 주력하는 기업수준의 단체교섭만이 아닌,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간의 입장을 절충하는 국가,산업 및 기업수준의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이룬 미국 독일 스웨덴 일본 이탈리아 등의 경우 오일파동 등으로 1970년대와 80년대에 현재의 우리와 같은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대립에 직면했다. 그 극복과정에서 국가나 산업 및 기업수준의 단체교섭을 포함한 다양한 대화채널이 동원되었다. 국내에서도 사용자들이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을 원한다면 안정적인 노사관계제도의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조의 단체행동을 현 제도의 틀내에서 불법으로 간주하기보다 변하는 경제·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도록 그 제도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는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협의 및 합의기구로 그 위상이 격상돼야 한다. 또 각 산업별로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간의 대립적인 이해가 절충되고 조화될 수 있는 산업수준의 소위원회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동시에 기업수준에서도 현재 대립적인 관계의 단체교섭 외에 노조의 협조를 유도하는 실질적인 구속력을 가진 새로운 노사협력채널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의 정비와 더불어 국내 노사관계의 실질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용자나 정부가 인식의 전환을 보여야 한다. 노사분규를 주도하는 것은 노조다. 그래서 노사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지만,이들의 행동은 구조조정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실의 경제 및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 노사관계제도의 구축에 기초해서 사용자들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노동조합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고,또 정부가 노사관계에 현재보다 좀더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노동조합도 보다 성숙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요구될 것이다. jjooyeon@kore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