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한산 계곡에 가면 키가 작고 여린 몸집의 노인이 땀 흘리며 빈병과 휴지를 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흰색 벙거지에 낡은 점퍼차림.한 손에 봉투,또 한 손에 집게를 들고 있는 그 사람은 박용진씨다. 불과 1년전까지 벤처기업 이디의 사장이었다. 평생을 자가용 한대없이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던 기업인.작년 4월 창업 20년을 맞아 자신이 갖고 있던 주식(당시 시가로 약 2백억원어치)을 모두 회사에 내놓고 훌훌 떠난뒤 자신의 꿈대로 넝마주이(?)로 산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 일이 기업경영만큼 중요하다며….쓰레기봉투를 등산객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버스 타고 다니며 모은 돈과 뜻있는 사람의 후원으로 산 것이다. 서울 보라매공원 부근에 있는 성대시장.이곳 옷가게에 지난달말 젊은이가 들어섰다. 10여벌의 아동복을 고른뒤 차 뒷좌석에 수북이 싣고 가는 곳은 대방동의 허름한 골목길.이곳에는 소년소녀가장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10여가구에 들러 옷과 생활비를 전달하고 어깨를 힘차게 잡아준뒤 떠났다. 매달 이들의 집을 방문하건만 지난달은 가정의 달이어서 신경을 더 썼다. 이 젊은이는 성실엔지니어링의 이동훈 사장.서울 중랑천 둔치 천막집에서 자란 고아출신 기업인이다. 소리없이 선행을 베푸는 중소·벤처기업인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불황으로 여유가 없고 누구보다 바쁜 사람들이지만 틈틈이 어려운 이웃이나 보람된 일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이경호 영림목재 사장은 인천에 있는 장애인의 집을 매월 찾는다. 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다. 이곳은 수십명의 정신박약아들의 보금자리.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식사를 할 수도 없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이다. 이 사장의 뜻에 찬동해 지난해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이 1억원을 쾌척한 곳이다. 서울 마천동 고아원을 자주 찾는 이계원 코인씨앤엠 사장도 비슷하다. 그 역시 사업으로 바쁘지만 한달에 한번 고아원 가는 일은 빼놓지 않는다. 기업인의 사명은 돈을 버는 것.이익을 창출하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뛰어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나 이들은 '남에게 베푸는 삶'이 사업 못지 않게 중요하다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