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지낸 타이슨(L.Tyson)은 "미국이 통상정책을 산업정책의 부적절한 대체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적 수단을 남발하지 말고 제대로 된 산업경쟁력 강화정책을 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은 철강수입과 관련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이는 타이슨이 말하듯 통상정책을 산업정책의 대체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들의 '위장된 산업정책'의 실패를 호도하는데 활용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외국의 보조금과 과잉설비가 오늘날 '미국 철강산업 위기'를 몰고 온 원흉인가. 미국이 스스로 분석한 경제위기 진단보고서로 유명했던 1989년 MIT의 'Made in America'를 참고하자.이 보고서는 미국 철강기업의 근본적 문제는 불공정 수입품에 대한 경쟁이 아니라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자만심,1970년대의 노사분쟁,그리고 1980년대의 설비낙후와 노동비용 상승이라고 결론지었다. 미국 의회 예산국(CBO)도 미국 철강업계가 1969년 수출자율규제(VER)가 준 절호의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수입규제가 경쟁력 회복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철강업계의 구조조정 능력만 상실케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철강업체에 지원한 보조금도 만만치 않다. 작년 1월 북미 국제철강협회는 미연방정부 및 지방정부가 지난 20여년간 수십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1999년 회계연도에 의회가 승인한 보조금 형식의 지원만 해도 대출보장 생산기술 세금감면 등 총 50억달러다. 1999년 1월 미 행정부는 철강업계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과거 5년간 지불한 3억달러의 세금을 예산에 반영,상계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과잉설비만 해도 그렇다. 미국 철강업계의 생산능력은 1990년대에 걸쳐 증가해 왔다. 미국 역시 과잉투자를 계속해 왔다는 얘기다. 1997년 이후 일부 한계생산 업체들의 파산을 두고 미국 전체 철강업계의 위기라 단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업계 노동자 그리고 정치인의 결탁으로 30년 넘게 보호혜택을 누려온 미국의 철강산업.일찍이 방게만(M.Bangemann)도 지적했듯 정치적 결정으로 얼룩진 '위장된 산업정책'으로 인한 미국 철강산업의 경쟁력 상실은 감추고 통상정책으로만 대응한다면 어느 국가가 이를 수긍할지 의문이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