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 한나라당 국회의원 YIM@manforyou.co.kr > 필자는 1997년 5월1일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18년 만에 보수당을 누르고 집권하는 것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몇 가지 사실이 놀랍고 인상깊었다. 우선 수상 이·취임 과정. 개표가 완료된 다음날 물러나는 수상은 전용 승용차를 타고 왕궁인 버킹엄궁에 가서 여왕에게 퇴임인사를 한 뒤 자신의 승용차로 갈아타고 궁전을 나온다. 그 직후 신임수상이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궁전으로 들어가 여왕에게 취임인사를 하고 전임수상이 두고 간 수상 전용 승용차를 타고 수상관저로 향한다. 이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수상실 직원과 지지자들 앞에서 간단한 취임인사를 하는 것으로 수상 이·취임절차는 모두 끝난다. 너무도 간소했다. 다음으로 수상 관저의 운영. 관저는 수상의 집무실과 살림집이 엄격하게 구분돼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집무실은 정부 예산으로,살림집은 수상 개인의 경비로 운영된다. 새로 취임한 블레어가 가족들과 함께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가지고 밴을 타고 이사하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공사(公私)를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구분하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웠던 것은 새정부의 정책 집행. 구체적인 정책들을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집권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블레어는 선거유세 중 교육에 가장 큰 역점을 두고 아주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필자는 마침 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교육현장의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는데 정권이 바뀐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과학기술 발전의 기초를 초·중등학교에서부터 다진다'더니 수학과 과학의 수업시간이 늘어났다. '지식정보화 흐름에 맞춰 컴퓨터를 연필처럼 자유자재로 쓰게 한다'더니 학교에 컴퓨터 교실이 생겼다. '학교와 가정과의 연계를 강화시켜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학생들을 지도하게 한다'더니 갑자기 숙제가 늘었다. 몇 안되는 사례지만 검소한 정치행사,엄격한 공사구분,치밀한 정책준비 등 영국 정치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선진정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