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한국계 펀드매니저들이 한국경제를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주 현지에 다녀온 금융계 인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최근 들어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이나 노사관계 불안,행정력 누수 등이 흡사 97년말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그 금융계 인사는 홍콩의 펀드매니저들이 당시 한국의 IMF행을 점친 사람들이라는 '경력 소개'까지 받았다면서 이들은 내년께 한국이 위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더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의 관측을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가볍게 넘기기에는 찜찜한 구석도 없지 않은게 요즘의 상황이다. 불안의 근원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직접적 위협은 아마 12일부터 시작될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이 아닐까 싶다. 민주노총,즉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어떤 단체던가. 순수성과 선명성,지도부의 확고한 역사인식 및 굽히지 않는 의지 등으로 상당한 신망을 받아온 노동계의 한 축이 아니던가. 하지만 연대파업만큼은 결단코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우선 정당성이 결여됐고 시기가 좋지 않으며 민주노총 창립선언문에 밝힌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역행하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이번 연대파업의 경우 대체로 소득수준이 적지 않은 근로자(사업장)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열악한 근로환경의 향상 등 '한계 노동자'를 위한 종래의 쟁의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다. 경총에 따르면 여천NCC의 경우 조합원 평균임금이 4천만원을 웃돌고(평균연령 38세) 효성울산공장은 3천3백만원(37세),대한항공 조종사는 8천5백만원(43세)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 중소기업 노조들은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유지가 더 절실한 때문인지 조용한 편이다. 따라서 중소 사업장들이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고임 사업장을 앞세워 연대파업에 나서는 것은 모양이 안좋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같은 고율의 임금인상 요구는 기업규모간 임금 격차를 확대시켜 자칫 전체 노동자간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노총의 '창립 정신'에 어긋난다. 게다가 대형 사업장은 대부분 조립·완제품 생산공장이어서 이곳의 파업은 곧바로 중소 납품업체의 가동중단이라는 연쇄 충격파를 던지게 된다. 이미 이런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파업이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보는 또 한가지 이유는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지금 대규모 연대 파업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못된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각종 규제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해외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터에 대규모 파업은 그나마 남아 있는 일자리를 외국에 내보내는 우를 범할 가능성도 높다. 그때 가서는 '공장이전 반대'파업을 할 것인가. 훌륭한 의사는 환자의 체력 상태를 봐가며 처방 강도를 달리 한다고 했다. 파업은 어차피 감수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다. 다만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수단임을 새삼 인식했으면 한다. 파업이 궁극적으로 또 다른 경제위기를 불러오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소중한 일터를 빼앗기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그때도 민주노총은 역사 앞에 당당할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지난 4일 재계가 대화를 요청한데 대해 민주노총측도 화답했다. 양측은 그동안 물밑접촉을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조건 없이 당장 만나야 한다. 지금 공장을 돌리고 비행기를 띄워놓는 일 보다 더 우선 순위에 있는 과제는 없다. hee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