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즈음에 깨달은 '사랑의 허상'..'난 유리로 만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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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경린(39)씨의 신작 장편소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생각의 나무)는 서른살된 여자가 스물다섯 시절 떠난 '애정여행'에 대한 회고담이다.
이 회고담은 '사랑의 허상에 대한 깨달음'으로 요약된다.
그것은 숭고할 것이라 믿었던 사랑이 '하수구에 떠도는 거품처럼 더럽게' 느껴졌던 경험에서 비롯된다.
주인공 은령과 그녀를 둘러싼 세 남자 선모 유경 이진은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졌다.
그러나 그 실패야 말로 오랜 세월후 진정한 관계를 구축하는데 실마리를 던져주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넘쳐보지 않고,바닥까지 뒤집어 보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삶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특정인의 순애보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연애실패담이란 점에서 한결 현실적이다.
소설은 서른살의 은령이 '심각하게 희망을 잃는 나이'스물다섯 시절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은령은 결혼을 통해 안정된 기성질서에 편입돼야 할지,아니면 자아실현을 위해 방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택일을 강요받는다.
선모와의 결혼 계획이 집안의 반대에 부닥치자 은령은 미련없이 지방 방송국 작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호기심에 이끌려 만난 시인 유경,또 집요하게 추근대는 이진과 각각 관계를 맺는다.
선모가 제도권 질서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면 유경은 양부밑에서 자란 은령과 상처를 교감할 수 있는 상대다.
이진은 막강한 재력으로 물질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인물이다.
은령은 여기서 '자의식없이 욕정으로 가득한 몸'의 존재를 경험하고 그것에 속절없이 빠져든다.
뭔가 더러운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는 유경을 찾고 공허해질 때면 이진의 빌라를 방문한다.
몸과 마음은 그렇게 분리돼 갔다.
이진이 육탄공세를 펼쳐왔을 때 그녀의 육체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를 가진 남자가 나 자신조차 그 정체를 본 적이 없는 순수한 욕망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관념의 제어없이 육욕만으로 이뤄진 삶은 '예정된'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중인물들은 상대를 위해 던지는 삶을 두려워한다.
작가는 결혼제도에 쉽사리 편입하는 것에도,육체의 탐닉을 통한 사랑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해주지 않는 양부의 그늘을 탈출하려 했던 은령의 '집떠나기'동기에 주목,부계질서가 지배하는 현실을 통박한다.
전씨는 지난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사막의 달'로 등단한 후 '아무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에 하나뿐일 아주 특별한 날' 등을 통해 이번 소설처럼 육체에 대한 자의식을 느끼며 삶과 사랑의 문제징후를 각성해 가는 인물들을 그렸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