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아마도 이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허공을 맴돌다가/괜히 나뭇잎만 흔들고/후미진 내 가슴에 돌아와/혼자 울겠지/사랑해/ 때늦게 싹이 튼 이 말이/어쩌면/그대도 나도 모를/다른 세상에선 꽃을 피울까 몰라/아픈 꽃을 피울까 몰라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말 중)" 지난 70∼80년대 저항시의 중심에 섰던 정희성(56) 시인이 사랑의 언어를 갖고 돌아왔다. 10년 만에 생애 4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창작과 비평사)를 낸 것이다. 30여년간 군사독재에서 미움의 언어에 길들여졌던 시인이 마침내 자신의 말로부터 해방을 선언했다. 시 '첫 고백'은 그 심경의 변화를 웅변한다. '오십평생 살아오는 동안/삼십년 넘게 군사독재속에 지내오면서/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다 보니/사람꼴도 말이 아니고/이제는 내 자신도 미워져서/무엇보다 견딜 수 없다고/신부님 앞에 가서 고백했더니/신부님이 집에 가서 주기도문 열번을 외우라고 했다/그래서 나는 어린애 같은 마음이 되어/그냥 그대로 했다 (전문)' 시인이 동심(童心)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세상이 한결 고요해졌(세상이 달라졌다 중)'기 때문이다. 시의 출발지점도 따라 바뀌었다. '원고지 앞에 다시 앉으니/도무지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애마냥/서투르고 그 말이라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나는 말하는 법을 새로 배워야 겠다 (말 중)'고 독백한다. 30여년간 시를 써 온 시인의 새삼스러운 고백은 닳고 지친 세상에 신선한 기쁨을 던진다. 그는 그동안 잡지사에서 온 원고청탁을 대부분 거절했다. 그 아낀 글로 '시의 궁전'을 지었다. '무굴제국 황제 샤자한이/이십년 넘는 세월 바쳐/사랑하는 이를 위해 지은/황홀한 무덤-타지마할/아름다운 이여/나는 가난하여 시의 작은 집을 짓네/내 마음/한켜 한켜/쌓아올린/타지마할 (시 타지마할 전문)'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