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 신당동 동산초등학교. 가파른 고갯길을 한참 올라가야 나타나는 이 학교는 그야말로 동산 위에 자리잡고 있다. "해병대산"으로 불리는 정상에서는 매연으로 뒤덮인 서울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비탈에 서 있는 계단식 학교 건물은 낡고 초라하다. 서울시내에서 정보화가 가장 잘 되어 있는 학교중 하나라는 얘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화요일 마지막 수업시간인 6교시. 3층 컴퓨터실에서는 3학년3반 아이들이 과학수업을 하고 있다. 뒷문으로 들어서자 헤드폰을 쓰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홍한(10)이가 "만화로 보는 태조 왕건"에 정신이 팔려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한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이 분주하다. 옆자리의 민기는 "나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를 보며 키득댄다. 남녀의 신체적 특징과 생명 탄생 과정을 그림을 곁들여 설명해 놓은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종이책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으로 읽는 e북(전자책). 이 학교는 지난 3월 e북 제조업체인 와이즈북(대표 오재혁)의 지원을 받아 1백여대 컴퓨터에 5백여권의 e북을 깔았다. e북은 동화 문학 컴퓨터 영어동화 등 11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돼 있다. 넓은 공간이 필요한 도서관 기능을 e북이 깔린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는 셈. 아이들은 일주일에 각각 4시간인 영어시간과 과학시간에 컴퓨터실에 올라와 e북을 읽는다. 김민지양은 "컴퓨터로 보는 성냥팔이 소녀가 훨씬 재미있다"며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이 학교에서는 굳이 컴퓨터실을 찾지 않더라도 교실마다 설치돼 있는 컴퓨터를 통해 언제든지 e북을 보고 자료를 찾을 수 있다. 3학년3반 교실에도 교사용 컴퓨터를 포함, 3대의 컴퓨터가 있다. 교탁 옆에는 43인치 대형 프로젝션 TV가 놓여 있다. 동산초등학교는 e북을 활용한 정보화교육과 함께 가상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멀티버추얼스쿨"을 통해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교사 학생 학부모가 대화방이나 게시판을 통해 얘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매주 한차례 가상학교에 일기를 올리고 선생님이 이를 확인한다. 3학년3반 담임인 여상우 선생님은 "가상학교를 운영하고 나서는 컴퓨터로 주로 게임을 즐기던 아이들이 보다 다양한 분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립학교인 동산초등학교가 정보화에 앞선 데는 오히려 열악한 주변 환경의 영향이 크다. 이하민 교장은 "학교의 위치나 외관이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며 "그래서 학생들과 부모들의 정보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학교를 만들려고 일치감치 정보화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학교에서 실시한 조사결과 동산초등학교 학생 6백명의 가정 인터넷보급률은 95%선. 이 가운데 초고속통신망에 접속돼 있는 가정이 70%를 넘는다. 모뎀을 통해 접속하는 가정을 포함하면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 선생은 "이미 학교에 초고속통신망과 펜티엄III급 컴퓨터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정에서 이용할 때와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며 "다만 아직까지 콘텐츠 개발자들의 배려가 부족해 글자나 그래픽이 교실상황에 맞지 않는 점이 흠이다"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