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허진(40.전남대부교수)의 작품에는 사람과 동식물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등장한다. 사람은 사람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상으로 화면전체가 소란스럽다. 그는 수년간 "익명인간"이라는 주제로 일관된 작업을 해왔다. 서울 소격동 금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7번째 개인전 주제도 "익명인간"이다. 이번 전시에는 변기 페트병 교통표지판 의자 사슴 기린 등 전혀 관련이 없는 대상들이 현대인들과 뒤섞여 있다. 작가는 무작위로 선택한 대상들을 한 화면에 몰아 넣어 일종의 가상현실의 콜라쥬와 몽타쥬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익명인간"은 인간성을 상실한 몰개성적인 현대인의 초상화에 다름 아니다. 바삐 움직이고 고통받고 절규하는 이들은 출구없는 건물에 갇힌 것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현대인의 삶을 다층적인 의미로 풀어 해체하려는 시도로 화면을 서술적이면서 병렬로 배치해 복잡한 구조를 이끌어 내고 있다. 다양한 인간의 욕구속에 함몰되어 가는 자아를 상실한 절망적인 인간을 연민의 차원에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25일까지.(02)735-6317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