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전문기자의 '세계경제 리뷰'] 中央銀 독립과 블레어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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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7년 5월8일,영국 런던시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관저.
1주일전의 총선에서 보수당을 누르고 새로운 총리가 된 토니 블레어 노동당 당수가 기자들 앞에 섰다.
당시 44세의 젊은 총리는 경제개혁 청사진을 자신만만하게 읽어내려 갔다.
국영기업의 민영화,사회보장강화,세금인상억제….
개혁안에는 금리정책 권한을 재무부에서 중앙은행으로 넘기겠다는 것도 들어 있었다.
4년후인 2001년 6월7일,블레어 총리의 노동당은 총선에서 다시 대승했다.
4년의 긴 시간을 건너뛰고서도 재차 대승할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40대 젊음에서 뿜어 나오는 블레어 총리의 강력한 카리스마인가.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을 이끌어 낸 탁월한 정치력인가.
물론 이것도 무시못할 재집권 요인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진짜 승인(勝因)은 따로 있다.
저물가 고성장의 '신경제'를 이룩한 그의 경제 치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빛나는 경제치적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에 경제전문가들은 '금리조절권의 중앙은행 이양',즉 영란은행의 독립을 주저없이 꼽는다.
그 전까지 영란은행은 재무부의 지시를 받아 금리를 조정하는 정부의 하수인이었다.
중앙은행의 독립,4년전의 영란은행과는 거리가 먼 용어였다.
그러나 금리조절권을 넘겨받은 후 영란은행의 독립성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필적할 정도로 강해졌다.
정치권의 입김과 영향력은 사라지고 금리를 독자적인 판단하에 올리고 내렸다.
영란은행은 지난 4년간 물가안정을 최우선시하는 금리정책을 폈다.
성장세가 다소 꺾이는 한이 있어도 물가불안조짐이 보이면 과감히 금리를 올렸다.
또 물가안정 상태에서 성장둔화 기미가 나타나면 즉각 금리를 내렸다.
영란은행의 독립적이고 일관된 금리정책으로 영국에도 신경제의 토양이 깔렸다.
블레어 총리가 작성한 영란은행의 독립선언문은 영국경제를 2류에서 1류로 격상시킨 경제의 마그나카르타였다.
흔히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할수록 경제는 안정된다고 한다.
영국도 이 케이스였다.
블레어 총리는 중앙은행을 독립시켜 경제안정의 열매를 땄고 재선의 기쁨도 누릴수 있었다.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