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어느 나라 말버릇인지... .. 김성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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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님들, 술 마시고 오는 남편을 위해 오늘 저녁 칡즙을 한번 준비해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눈부신 옷차림과 번쩍이는 장신구에 미모와 율동감 넘치는 몸매를 자랑하는 텔레비전 진행자 여성이 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필자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로 전락하고 있는 이 시대 남편들의 건강에 신경을 써주라는 그 갸륵한 말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주부님'이라는 호칭이다.
8·15와 함께 문득 많이 쓰이게 된 칭호가 '님'이다.
'햇님''달님''임금님''하느님'과 같이 어떤 대상에 '님'을 붙였던 것은 그 대상이 모두 신격(神格)이었던 까닭이다.
한없이 존중해야 될 절대한 '그 무엇'에만 붙여주었던 가장 높은 헌사(獻辭)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서로 그리워하는 사이에 쓰이게 되다가,나중에는 남을 높여주는 말로 쓰이게 되었으니,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 써왔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반드시 사람의 이름 뒤에만 붙여 써왔다는 점이다.
사람이 맡아서 하고 있는 어떤 직책이라든지,칭호 또는 호칭 뒤에 붙여 쓸 수는 없는 말이다.
그런데 '님'이라는 말이 경우와 이치에 맞지 않게 마구 쓰이고 있다.
'사장님''장관님''면장님'같이 어떤 조직체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님'자를 붙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됐다.
그러더니 '의원님''변호사님''박사님'에서 자기의 지아비를 가리켜 '우리 O박사님''O사장님''우리 원장님''우리 O교수님'같은,말이 안되는 칭호를 거쳐 부유한 집안의 부인이나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기혼여성이면 그 나이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사모님'이라고 부르기에 이르렀고,마침내는 이제 '주부'라는 보통명사에 이르기까지 '님'을 붙이기에 이른 것이다.
아마도 가정부인네들한테 아부하고 아첨하여 물건을 많이 팔아보자는 장사꾼들의 얄팍한 상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어느덧 방송진행자들까지 이런 표현을 쓰기에 이르렀다.
이러다가는 '남편님''아내님'같은 말까지 나오게 될지 모르겠다.
호칭과 칭호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장인 장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며,어른한테 음식을 권하며 하는 말인즉 '드셔요'이다.
'드셔요'라는 것은 보통의 비슷한 또래 남남 사이에 쓰는 말이지,자기의 부모나 손위 어른들한테는 절대로 쓸수 없는 말이다.
'잡수시지요'가 맞다.
뿐인가.
대학생 또는 새파랗게 젊은 남녀가 부모뻘 되는 선생이나 어른들 앞을 물러가거나 전화를 끊기 전에 하는 말인즉 '수고하세요'.
손윗사람한테 무엇을 받았거나 인사를 해야될 경우 반드시 '고맙습니다'라고 해야 옳은건데 손아랫사람한테나 쓸 수 있는 인사말인 '고마워요'이고 '미안'과 '죄송'의 차이를 모른다.
'엄마 미안해요.아빠 미안해요'하는 자식을 보고 부모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인즉 'LA에 들어간 김 박사한테서 팩스 온 거 없니?'
높임말을 써야할 사람에게 낮춤말을 쓰고,낮춤말을 써야할 사람에게 높임말을 쓰고 있다.
부모한테 반말을 하고,대학생 또는 직장인이 된 사람들이나,시집가서 아이들을 낳은 성인여성이 '엄마 아빠'라는 혀짤배기 말로 친정부모한테 경우에도 맞지 않는 어법의 반말지거리를 해대는 것이 예사다.
제 서방을 가리켜 아비(아빠)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면 다만 모골이 송연해진다.
여기에 더하여 "엄마 사랑해요.아빠 사랑해요"하니,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의 말버릇인가.
폭력과 불륜을 부추기는 '드라마'는 물론이고 이런 패륜적 말투가 난무하는 것이 특히 '외화'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반만년 넘게 아름답게 지켜내려온 윤리규범과 도덕은 그만두고,도무지 어법에 맞지 않는 말들이 '더빙'되어 나오거나 '자막'으로 나오니,이런 영화를 보는 청소년 또는 이른바 '신세대'들의 말투가 영화의 그것을 닮아가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른바 오락프로라는 것은 더 가관이다.
속곳과 단속곳을 넘어 다리속곳차림의 젊은 여자들이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위를 필사적으로 흔들어대며 이상한 소리를 질러대는데, 더구나 들어주기 어려운 것은 진행자라는 사람들이 간투사처럼 틈틈새새로 넣는 소리이니 '오우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