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증권회사들을 제치고 뉴욕 월가를 지배하고 있다. 세계금융 중심지인 월가의 황제는 그동안 누가 뭐래도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증권사)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시티그룹이 올들어 증권사들의 고유업무였던 주식 및 채권인수 분야에서 사상 처음 1위로 뛰어 올랐다. 은행들의 주식운용 규모가 증권사들의 두배에 달할 정도다. 증권과 은행업무를 분리했던 글래스스티걸법이 1999년 폐지된 후 은행들이 증권업무에 뛰어들면서 시장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월가의 권력이동은 증권사를 인수한 은행들의 원스톱서비스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높은 주식 및 채권인수나 기업인수합병(M&A) 등 증권업무를 따내기 위해 싼 이자로 기업들에 대출해 주는 '대출-증권업무 연계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 있었던 크래프트식품의 기업공개(IPO)는 월가의 판도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기업공개 규모가 86억8천만달러로 사상 두번째로 컸으나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증권사 대신 은행인 CSFB가 주간사 업무를 맡았고 시티그룹이 공동간사로 참여했다. 크래프트식품의 IPO는 CSFB와 시티그룹을 올해 신규 IPO 업무 부문의 랭킹 2,3위 업체로 만들어 놓았다. 시티그룹의 경우 올들어 주식과 채권인수 부문의 수수료에서 지난해 1위였던 골드만삭스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섰을 정도다. 지난해 5위였던 시티그룹은 올들어 최근까지 발생한 56억달러의 주식 및 채권인수 수수료중 무려 20%에 가까운 9억8천6백만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시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등 '톱3 은행'이 관리하고 있는 고객위탁 주식은 약 4백억 달러 규모로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톱3 증권사'의 2배가 넘는다. 채권시장에서도 부동의 1위였던 골드만삭스를 5위로 밀어내고 시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 등 은행들이 1,2위를 다투고 있다. 상황이 급변하자 증권사들의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데이비드 코만스키 메릴린치 회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오래된 고객들이 하나둘씩 우리를 떠나 은행들과 거래하고 있다"며 "지금 증권사들은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 관계자들은 "대출을 미끼로 과감하게 증권업무를 확장하는 은행들에 위협받고 있는 대형 증권사들이 최근 들어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거꾸로 은행인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고 전한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