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여의 기간을 "IMF 체제"라고 표현한다면 그 감독관은 데이비드 코 IMF 한국 사무소장이었다. 지난 99년말 부임이후 1년반 동안 한국언론에 코 소장만큼 자주 등장한 이방인의 이름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영향력도 컸다. 그의 입에서 나온 "금리인하 불필요론" 한마디는 채권시장을 주저앉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소위 "감독관" 생활을 청산하고 내달말 미국 워싱턴에 있는 본부로 돌아간다. 서울 생활을 마감하고 있는 코 소장과 안충영 중앙대 교수가 지난 14일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만나 장시간 대담을 가졌다. 그는 대담에서 "한국의 개혁성과는 성공적"이라고 총평했다. 한.미간 논란을 빚고 있는 신속 회사채 인수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연초 IMF 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양해된 부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안 교수 : 3년간에 걸친 한국의 IMF 금융개혁 프로그램이 지난해말로 종결됐습니다. 이제 한국은 다른 IMF 회원국처럼 연례 정책협의를 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경제정책상의 간섭은 받지 않게 됐습니다. 당초 한국이 이렇게 빨리 회복할 것으로 보셨습니까. ◇ 코 소장 :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도 한국이 이처럼 빨리 차입금을 상환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은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 IMF 차입금을 갚고 있습니다. 이런 성공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 안 교수 : 한국의 재벌은 농업중심의 경제를 불과 30여년만에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분야에서 세계적 생산기지를 갖춘 산업경제로 변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재벌들은 다각화 경영을 통해 압축성장을 달성하는데 상당한 기능을 발휘했던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90년대 초부터 진행된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특히 금융의 글로벌화 현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데는 실패했다고 보는데요. ◇ 코 소장 : 동의합니다. 한국이 지난 30년동안 연평균 8.5% 이상의 성장을 해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5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은 아프리카 수준이었지만 벌써 OECD에 가입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동안의 성장 모델은 개발과정에만 적용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성숙된 시장지향형 경제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미 지금처럼 성장해 버린 한국이 걸치기에는 너무 작은 옷이 돼 버린 것이지요. 과거의 급성장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가 드러나지 않다가 금융시장이 열리면서 불거져 나온 거죠. 글로벌화의 특징중 하나는 나쁜 정책을 매우 신속히 처벌한다는 점입니다. ◇ 안 교수 : 한국의 4대 부문 개혁 가운데서는 금융분야 성적이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실금융기관은 퇴출되고 대형화됐습니다. 은행들은 관치금융의 여신풍토를 일신하고 수익성 위주 경영, 미래자금상환능력(FLC) 기준에 의한 여신, BIS 비율준수,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했습니다. ◇ 코 소장 : 금융부문의 개혁이 가장 진전됐다는 견해에 동의합니다. 한국의 은행업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신용문화도 바뀌었구요.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온 것과 앞으로 이뤄야 할 것 사이에는 선을 그어야 합니다. 은행들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주는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취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은행들이 대출기업의 신용도를 제대로 평가할 만큼 충분한 재무정보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기업들도 미래의 캐시플로(현금흐름) 전망을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런 관행에 익숙지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제도와 문화를 바꾸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구조개혁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겠죠. ◇ 안 교수 : 은행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사실상 '국유화'됐습니다. 은행경영에 정부 입김이 작용하게 된 것이지요. 이에대해 '신관치'라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 코 소장 : 정부가 은행의 대주주로 있는 한 간섭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관치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정부는 모든 은행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정부가 1백% 소유하고 있는 은행중에도 시장 원리대로 운용된 예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정부가 은행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 좋지는 않습니다. 지분은 빨리 처분하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 안 교수 : 금융개혁의 성과는 기업개혁의 성과와 맞물려 있습니다. ◇ 코 소장 : 기업개혁이 금융부문보다는 뒤쳐져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부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현대의 계열분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당히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이닉스도 긍정적으로 봅니다. 일부 대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긴 하지만 이제 한국에 시스템적인 리스크는 없다고 봅니다. ◇ 안 교수 : 국제적 회계공시기준 이행, 집단소송제 도입 등 기업 투명성이 주가에 반영되는 시장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한국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 기업의 투자활동도 장려돼야 합니다. 투명성이 보장된다면 재벌들의 부채비율 2백%와 출자총액제한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 코 소장 : 동의합니다. 시장이 기업의 경영상황을 심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투자결정은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따라서 사업의 성격별로 부채비율의 신축적 적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정에서 '부채비율 2백%'라는 목표가 일종의 표준적 지표로 기능하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조조정과 신규투자의 출자총액 제한은 신축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 --------------------------------------------------------------- [ IMF 사무소 계속 남아...정례 정책협의 등 수행 ] 재경원에 IMF 한국사무소가 차려진 것은 1998년 3월이었다. IMF의 개혁프로그램을 감독하기 위해서였다. 그에 앞서 1997년 12월4일 한국정부는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3년간의 개혁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내용의 의향서(Letter of Intent)를 교환하면서 속칭 'IMF체제'에 공식 돌입했다. IMF 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3일로써 공식 종결됐다. 그러나 IMF 한국사무소는 그대로 존속한다. IMF 회원국으로서 연례 정책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무소는 앞으로 정기적인 정책협의를 위한 실무기능을 수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