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 6월초 중국 창춘(長春)시를 가로지르는 스탈린대가(斯大林大街)를 버스를 타고 지나갔다. 당시 이 거리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일제시대 때 지은 큰 건물들과 낡은 아파트 옆에 늘어선 버드나무에서 흰 씨앗들이 떨어져 거리 곳곳을 풀풀 날아 다녔다. 지난 3일 딱 9년만에 이곳에 와서 창춘시 정부에서 나온 안내인에게 스탈린대가가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우리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 길이 바로 스탈린대가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거리엔 인민대가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현재의 창춘 시장인 리수(李述)가 시장이 되면서 이 거리 이름을 인민대가로 바꿨다는 것이다. 이 인민대가에선 옛날 모습을 전혀 찾을 길이 없었다. 넓게 트인 대로엔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신축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날 저녁 '스탈린'을 과감히 버린 리수 시장을 자유대로 102번지에 있는 창춘우호회관 2층 접대실에서 만났다. 그는 시원시원한 말솜씨로 "창춘시는 중국 어느 지역보다 중소·벤처기업의 투자를 환영한다"고 얘기했다. 상하이 칭다오(靑島) 톈진(天津) 등은 대기업을 유치하는 데 급급하지만 창춘은 아무리 소규모 기업이더라도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수 시장이 이렇게 해외 중소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데는 남다른 고뇌가 숨어 있는 듯하다. 창춘시가 속해 있는 지린(吉林)성은 중국 23개 성 가운데 경제개발 수준이 꼴찌에서 세번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빨리 유치해야 할 상황이다. 그는 흑묘(黑猫)이든 백묘(白猫)이든 해외 자본이라면 서슴없이 유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를 실천했다. 그의 자본유치 전략은 벌써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창춘시 인근에 개발한 창춘경제기술개발구(CETDZ)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개발된 이 지역엔 22개국에서 무려 3백48개 업체가 입주했다. 유치한 자본 규모는 19억2천만달러. 이는 한국 원화로 2조원이 훨씬 넘는 돈이다. 중국 동북지역의 도시가 단기간에 이렇게 대규모 외화를 유치해 낸 건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이 CETDZ엔 해외 중소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10개의 '소구(小區)'도 만들어져 있다. 홍콩공업구 미국공업촌 대만공업구 유럽공업구 등을 별도로 설정해 놓았다. 이 소구에 입주하면 토지 임대료를 40%나 할인해주는 등 17가지 혜택을 준다. 지금 이곳에선 광전자 바이오 디지털업체들이 창춘시내 52개 대학에서 배출한 고급 인력을 활용,첨단 수출제품을 생산하느라 숨돌릴 틈이 없다. 이 지역이 성공을 거두자 창춘시는 창춘고신기술산업구와 징웨탄관광경제개발구에도 외자를 유치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리수 시장의 외자유치 전략은 공장총량제 수도권정비법 등으로 인해 외국 기업이 공장을 짓고 싶어도 못 짓고 도망가는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볼 때 그저 부럽기만 하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