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정이 급진전되고 있다. 지난 5월말 여.야.정 정책포럼에서의 합의에 따라 여야3당이 공동발의로 6월 임시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놓고 있어 이번 달내 국회통과가 확실시 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온 나라가 떠들석하게 추진해 온 것이 기업구조조정인데 이제와서 새삼 '웬 촉진법'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재까지 기업구조조정은 금융회사간 사적 합의인 기업구조조정협약과 금융감독 규정에 따라 추진돼 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가 노출돼 왔다. 법 제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현 제도로는 부실징후 기업의 조기 포착이 어렵다. 주기적으로 부실기업을 골라내는 이벤트식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경제 전체에 불필요한 충격을 줘왔다. 그나마 골라낸 부실 징후기업도 금융회사 임직원의 보신주의와 기관이기주의까지 겹쳐 입씨름만 하다 허송세월하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부실은 점점 커져 금융회사의 손실이 눈덩이 처럼 불어난 것은 물론이고 적기에 조치를 취했더라면 회생가능한 기업까지 망하게 하는 등의 부작용이 속출해 왔다.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우리 경제 최대 아킬레스건인 지지부진한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구조조정을 사적인 합의에 맡기는 대신 법적 강제력이 부여되는 시장규칙을 만들어 채권금융회사들이 이를 적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채권액의 4분의 1 이상 발의로 채권단협의회가 소집 통보되면 그 시점부터 해당기업에 대한 채권행사를 1∼3개월간 못하게 하고 4분의 3이상 동의로 채권단협의회가 설립되면 모든 채권금융회사가 의무적으로 이에 참가하도록 하고 있다. 구조조정에 참여해 손실을 함께 분담하기 보다는 무임승차(Free-Riding)를 통해 나만 살겠다는 자사(自社)이기주의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협의회 의결에 반대하는 채권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채권을 시가에 매수해 줄 것을 협의회측에 요구할 수 있도록 해 권리 구제의 길을 터주고 있다. 아울러 원활한 기업구조조정 추진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도 포함돼 있다. 채권금융회사가 부채를 출자전환하는 경우 타기업 출자제한(은행·종금:15% 이내, 보험:동일계열 발행주식에 총자산의 5% 이내)에 대한 예외를 인정해 주고 법원의 인가 없이도 액면 이하의 출자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채권행사 유예기간중의 신규지원 자금에 대해서는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법정관리 전환시에도 공익채권으로 분류해 기업 회생을 위한 자금지원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채권단협의회 결정에 따라 채권 재조정을 한 경우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토록 함으로써 훗날 책임 추궁이 두려워 복지부동해 왔던 금융회사 임직원이 안심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업구조조정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촉진법은 문제점도 만만치 않게 내포하고 있다. 채권유예 조치와 채권단협의회 강제가입 조항은 재산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헌 소지와는 별개로 국내 금융회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강제 가입토록 하고 있으나 외국계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이를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해 국내 금융회사 돈으로 외국 금융회사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아울러 금융회사의 손실 부담을 전제로 기업구조조정이 촉진될 경우 부실기업주가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나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대주주 주식처분권 행사 조항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사재출연 등 보다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강제할 경우 주식회사의 근본원리인 유한책임 원칙을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촉진법은 채권금융회사와 부실징후 기업에 대한 과도한 강제 규제는 완화하고 자율적인 합의 도출이 가능하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방향으로 대폭 수정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5년으로 돼 있는 법률 존속기간도 단축할 필요가 있다. 시장자율 침해기간이 장기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이 법에 의한 구조조정 추진체제가 최선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기 때문이다. < 논설.전문위원.경제학 박사 kghwcho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