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피우는 '生命의 발전소'..안도현 시집 '아무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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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아무 것도 아닌 것 때문에/단 한번 목숨을 걸 때가 있는 거다/침묵속에도 뜨거운 혓바닥이 있고/저 내리는 헛것 같은 눈,아무 것도 아닌 저것도 눈송이 하나 하나는/제각기 상처 덩어리다,야물게 움켜쥔 주먹이거나..."(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중)
안도현(40) 시인은 7번째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에서 사소한 물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함으로써 자연의 섭리와 삶의 원리를 드러낸다.
이 시집은 소박한 풍경을 소담스러운 언어로 빚어내는 시인의 기량이 한층 무르익었음을 보여준다.
'그 많고 환한 꽃이/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알전구를 수천,수만개 매어 다는 걸 봐/…/그래,/살구나무 어디인가에는/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살구나무 발전소 중)
살구나무 발전소는 생명의 원천이자 시인이 추구하는 이상향이다.
그것은 '목련꽃'처럼 시인의 삶에 감흥과 질감을 선물한다.
'/징하다,목련 만개한 것 바라보는 일/이 세상에 와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라는 것 중에/두근 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니/'(목련 중)
그러나 시인은 목련꽃과 살구꽃처럼 온전한 생명에 도달하지 못한 채 '물집'으로 존재함을 발견한다.
마치 '호두가 아구똥지게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거나 감자가 덕지덕지 몸에다 흙을 처바르고 있는 것'(물집 중) 처럼.
스스로 물집에 불과하다는 각성은 철저한 자기반성의 산물이다.
'세상밖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만진' 손과 '분노 앞에서도 핏발서지 않는'눈을 가진 그는 '마흔살이 되도록 한 일이라면 소낙비처럼 허둥대며 뛰어다닌 일'이라고 되돌아본다.
문제의 인식은 해결의 출발점이다.
시인은 물집치유를 위해 생명에 충만한 자연과 합일을 모색한다.
그 합일의 과정에는 거부와 상처 아픔이 동행한다.
시 '도둑들 중'에서 그는 참새둥지에 손을 밀어 넣어 참새로부터 거절당하는 순간 자신도 물컹한 살의 촉감에 놀란다.
동시에 자신이 도둑이라는 묘한 자의식에 시달린다.
시인은 마침내 시 '논물드는 5월에'에서 이같은 도둑의식을 딛고 물 위를 뛰노는 '물방개'와 '소금쟁이'가 되는 동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의 독특한 시선은 기발한 착상과 유머로 채색되고 있다.
꽃은 때가 되면 피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야 허공이/나무에다 매달아 주는 것'(산딸나무,꽃 핀 아침)이라든지,3월의 목련꽃이 때아닌 눈을 맞은데 대한 당혹감을 '자글자글 햇빛이 끓는 봄의 냄비 뚜껑을/좀 열어보려다가/이거 신세 조지게 생겼습니다'(3월에 내리는 눈 중)고 표현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