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연예인이 입을 옷을 조달하고 소품을 챙기는 사람을 패션 코디네이터라고 부를 수는 없지요. 기획부터 연출까지, 어떤 주제에 맞춰 스타일링의 모든 과정을 이끌어가는 전문가만이 그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패션 코디네이터로 손꼽히는 서영희(39)씨. 최근 자신의 직업이 신세대들 사이에 인기직종으로 급부상했지만 그 역할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듯하다고 말했다. 패션 코디네이터란 "어떤 패션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될때 전체적인 이미지를 정하고 주제를 완성해 가는 책임자"라는게 서씨의 견해다. 올해로 일을 시작한지 10년째를 맞고 있는 그도 3년 전쯤에야 비로소 패션 코디네이터라는 명함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리 뉴욕 등 해외에 나가면 반백의 머리에 나이 지긋한 노장들이 현역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 10년 이상의 스타일리스트 경력을 쌓아야 코디네이터로 불린다고 하더군요" 오랜 시간의 노력과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감각과 열정만으로 코디네이터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가 처음 패션 코디네이터를 향해 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91년 패션잡지 "멋"의 화보촬영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잡지를 넘기다가 문득 "나라면 이렇게 해볼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작정 스타일리스트를 하겠다고 지원했죠" 경희대 의상학과 졸업 후 코오롱상사 디자인실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결혼후 몇년간을 전업주부로 지내던 그의 "끼"를 한 패션잡지가 다시 일깨운 셈이다. 데뷔작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피스룩이라는 주제에 맞춰 옷과 소품, 헤어스타일을 골라 모델을 꾸몄고 보수는 6만원을 받았다. 잡지일로 시작해서인지 서씨는 지금도 주로 잡지와 지면광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제는 잡지사측에서 대강의 화보 의도를 전달한 다음 다른 모든 것을 서씨에게 맡기는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 예를 들면 한 패션잡지가 서영희씨에게 "여성적인 분위기"의 패션화보촬영을 요구하면 우선 주어진 주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레이스켈리 같은 우아함? 마돈나의 섹시한 여성스러움? 요즘 유행하는 펑키 섹시?" 이중 어떤 이미지가 잡지에 어울릴까 고려해 구체적인 컨셉트를 잡는다. 그 다음은 그 주제를 가장 잘 찍어줄 사진작가를 선정하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맡을 스텝을 구성한다. 패션매장을 뒤져 의상과 액세서리 소품을 챙겨 놓는 것도 중요한 과정중 하나다. 촬영장소 섭외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면광고 일도 내용은 비슷하다. 다만 단 한컷으로 승부하는 만큼 강렬한 주제전달에 더욱 신경을 쓴다. TTL 광고에서 모델 임은경의 호소하는 듯한 표정도 서씨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화장품 라네즈의 봄 광고에 참여, 신선한 이미지 창조를 위해 모델 이나영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내기도 했다. 서씨는 "패션 코디네이터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며 "모든 스태프가 최상의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마이너"임을 강조했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