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 서울대 통계학 교수 / 자연과학대학장 > 지난 70년대에는 장래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답하는 초등학교 학생이 10명 중 2∼3명이었는데,요즘은 1명을 찾아보기 힘든다고 한다. 과학기술의 장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학은 의대 치대 한의대 공대 등이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자연과학대학은 뒷전으로 밀려 있다. 기초과학 연구와 교육의 중심기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을 보면,최근 수년간 교수직을 포기하고 떠나거나 떠날 의사를 가지고 있는 교수가 상당수 있어,우리나라 과학의 앞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초등학생들은 의사 검사가 되고 싶어하고,고등학생들은 봉급을 많이 받는 직종을 택하고자 하며,서울대를 떠나는 교수들은 연봉 3천여만원(부교수 기준)밖에 안되는 '박봉'으로 인해 생계를 꾸려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6월5일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가 발표한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 기본 모형'을 보면 4년제 일반대 학부과정을 2년 이상 마치고 90학점 이상을 취득하면 누구나 '의학·치의학 교육입문시험(MEET)'을 거쳐 의대·치대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자연과학대학 학생들은 대부분 의·치대 전문대학원 입시준비에 몰리게 되고 기초과학의 황폐화는 명약관화하다. 만약 의학전문대학원을 꼭 하고 싶다면,일반대를 졸업한 학생을 상대로 신입생을 뽑는 소위 4+4제가 바람직하고, 의·치의예과 정원을 자연과학대학에 주어 생명과학 화학 수학 등을 공부한 후에 전문대학원으로 진학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보통신부가 6월21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IT 인력양성 종합계획을 보면 5년간 1조원을 투자해서 IT 관련학과(주로 전기 전자 컴퓨터 등)를 적극 지원,전문인력 20만명을 양성하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계획에서도 나뭇잎만 보고 그 뿌리를 못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실력을 갖춘 IT 전문인력은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등을 공부한 인력만이 아니라,수학 통계 물리 등 기초과학에 뿌리를 둔 수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인력이다. 기초과학에 뿌리를 둔 인력은 창의적일 수 있으며,깊은 이론 연구가 가능하다.사실상 컴퓨터 반도체 통신 등의 기본원리는 모두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에게서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보통신부는 이런 점에 착안해 기초과학 육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90년대 이후 세속적 인기와 단기적 성과에 의한 학문의 위상을 평가하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기초과학은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신지식인'이 강조되고,시장의 경제논리를 앞세운 교육개혁이 진행되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져 가고 있다. 여기에는 모집단위 광역화(학부제) 도입과 기초과학 분야의 입학정원 축소가 한몫을 하고 있다.왜냐하면 비인기 학문으로 분류되는 일부의 기초과학 분야에 학생들이 오지 않아 폐과의 위기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60∼70년대에 '과학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KIST를 설립하고,과학자를 특별히 우대하고,대덕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과학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많은 해외 두뇌들을 국내에 유치할 수 있었고,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과학자들이 다시 고국을 떠나고 있다. 또 과학발전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열기가 상당히 식고 있지 않나 의심이 가고 있다. 이제 다시 한번 '과학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매진할 때다.특히 기초과학은 과학기술의 뿌리에 해당하므로,지금 그 뿌리에 비료를 주고 물을 주지 않는다면,과학기술의 탐스러운 열매는 결코 딸 수가 없을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부가 후원해 번지고 있는 '사이언스 북 스타트' 국민운동은 초등학생들에게 과학 마인드를 불어넣어 주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성원이 기대된다. 시장 경제논리에 의하면 기초과학은 자생력이 약하다. 그러므로 기초과학은 모든 선진국들이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이런 점에 유의해 '과학입국'으로 새롭게 출발하기를 당부한다. parksh@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