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집단소송제의 정치 경제학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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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투자정보대학원장 >
정부와 여당은 최근 상장기업중 순자산 2조원 이상인 기업에 대해 주가조작, 분식회계, 허위공시에 국한된 집단소송제를 내년 1월부터 시행키로 최종 확정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기업규제를 완화하면서 재계에 기업경영 투명성 개선이란 반대급부를 요구해 왔다.
재벌개혁 후퇴라는 비난이 나올지 모른다는 점을 의식하고 재계에 성의 표시 압력을 가한 것이다.
이같은 정부 정책행태는 관련 당사자간의 전형적인 '주고 받기'식 정책접근으로서 기업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해 정부가 공고한 철학적 논리적 토대를 갖추고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출자총액제한 예외인정 등 핵심규제 완화는 '부채비율 2백%'라는 지시적 규제에 대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측면이 강하다.
시장을 우회하는 지시적 규제는 규제회피 행위를 유발하게 되어 있다.
당시 기업은 증시 호황을 활용, 순환출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함으로써 부채비율을 맞추었다.
그 반작용으로 부활된 출자총액제한이 기업의 핵심역량 구축과 구조조정을 위한 출자를 막는 족쇄가 됐다.
따라서 이번 규제완화는 재계에 대한 시혜도, 재벌개혁의 후퇴도 아닌 '시장경제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당연한 조치다.
집단소송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권 행사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핵심제도로서 세계적 기준에 따른 시장경제 시스템의 일부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에 경제자유를 대폭 허용하되 자유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행사하지 않을 경우 그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즉 시장경제질서의 기본에 충실한 기업정책을 구사했다면 정부와 재계가 흥정하는 듯한 구태를 재연할 필요는 없었다.
정부와 여당은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는 물론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어 기업가치가 제고되고, 외국자본의 유입이 증대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기업투명성과 기업가치 제고는 인과관계로서 설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기업가치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수익창출능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기업투명성은 기업가치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외국자본의 유입을 가로막는 것은 과다한 규제와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열악한 기업환경이지, 집단소송제의 불비(不備)는 아니다.
그리고 집단소송제는 사법부의 응징 대상이 되는 범법행위에 대한 사후적인 피해구제 제도로서 기업지배구조와는 사실상 무관하다.
또 집단소송제의 단계적 도입을 위해 1차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만을 집단소송 대상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역차별 시비는 차치하더라도 기업으로부터의 피해구제 금액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 정작 경영이 투명하지 못해 집단소송이 필요한 기업보다는 소위 '잘 나가는 기업'에 집단소송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치의 보편성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또 소송남발 가능성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변호사 등 소송대리인의 승소와 패소에 따른 비대칭적 위험부담으로 소송대리인에게 과다한 유인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즉 패소에 따른 시간 비용 손실은 경미하나 승소 때의 이익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특히 변호사의 수임료 비중이 높을수록 기업이 지불하는 구제금액과 투자자가 수령하는 보상액 사이의 차이가 커져 투자자의 실질 혜택은 저감된다.
뿐만 아니라 증권거래의 특성상 기업의 불법행위와 투자자의 손해액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어려워 집단소송은 화해나 합의로 종결될 개연성이 높다.
미국의 경우에도 집단소송의 90% 이상이 화해.합의로 종결되고 있다.
따라서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위법을 사전에 교정하는 억지장치보다는 주가하락에 대한 일종의 보험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집단소송제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작은 정부, 경제자유, 법치, 그리고 재산권 존중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시장경제질서가 구축되는 것이며, 집단소송제는 법치의 한 범주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이 정부의 계획과 정책에 순치되는 순간, 시장경제의 역동성은 사장될 수밖에 없음을 유의해야 한다.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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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