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처음엔 골프에 대한 감정이 나쁜 편이었다고 한다.

당시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골프를 치느냐''며 골프채를 압수해간 적도 있다는 얘기를 문학림 비서실장으로부터 들었다.

5·16쿠데타 이후 혁명세력들은 워커힐 호텔에서 잦은 회합을 가졌다.

호텔 가는 길에 서울CC 2번홀과 7번홀이 보였는데 이를 가리키면서 "무슨 계란같은 걸 치느냐"며 미친 짓을 한다는 식으로 여겼다.

실제로 골프장을 없애버리고 그곳을 밭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자주 나왔다고 한다.

김 부장이 백안시하던 골프를 치게 된 계기는 1963년 7월 중앙정보부장 취임 후 당시 차장이던 이병두씨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변호사 출신인 이 차장은 그동안 몰래 골프를 쳐왔는데 아무래도 부장이 골프를 쳐야 마음놓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김 부장에게 골프를 권했다.

김 부장은 처음엔 시큰둥했으나 끈질기게 권유하자 마침내 허락하고 문 비서실장에게 "사무실에 ''인도어''를 빨리 만들라"고 명령했다.

비서실장이 ''인도어''가 뭔지를 알 리가 없었다.

그래도 부장의 명령이니 안따를 수가 없었다.

문 비서실장은 경리과장에게 "인도어를 사오라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자 경리과장은 "인도어라니? 그게 뭐야.뭐 인도고추를 사오라는 거야"라고 되물었다.

문 비서실장도 "나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경리과장이 직접 이 차장에게 확인해보고 골프연습장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자 문 비서실장은 김 부장을 찾아가 "부장님,지금 대통령도 골프를 안 치시는데 관청안에 이런 걸 만든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라고 반대에 나섰다.

김 부장은 이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이 차장이 "부장이 하겠다는데 왜 그러느냐"며 화를 냈다.

결국 김 부장이 직접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2타석에 2백m 길이의 연습장을 정보부내에 설치했다.

레슨은 당시 서울CC 이사장에게 부탁해 한참 촉망받던 신예 김성윤 프로가 전담코치로 선정됐다.

김 부장은 김 프로에게 1년간 레슨을 받았다.

배울 때는 필드에 나가지 않았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김 부장은 이왕이면 잘 할 때 나가겠다는 욕심으로 연습에만 전념했다.

김 부장은 골프를 시작한 지 7∼8개월 뒤 서울CC로 처음 라운드를 나갔다.

이후 매일 아침 새벽 4시면 골프장에 가서 9홀을 도는 강행군을 두달간 했다.

겨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부장 특유의 저돌적이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골프에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김 부장이 얼마나 골프에 열중했는지 "내가 골프치는 것만큼 영어공부를 했다면 통역이 필요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