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siness Week 본사 독점전재 ] 몇달전만 해도 유럽 경제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은 12개 국가로 구성된 유로존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의 기업과 가정을 강타한 폭풍을 쉽게 견뎌낼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이들은 유로존 경제에서 대외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8%에 불과해 대외 수요감소로 인한 타격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석학들은 유럽이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기관차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들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 커지는 우려의 목소리 =유로화가 공식 통용되는 소위 'E데이'를 6개월여 앞둔 현재 유럽은 고통에 빠져 있다. 이달들어 전해진 기업뉴스는 우울한 소식들뿐이다. 노키아는 이동전화 매출감소로 올해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멘스는 수요감소로 인해 8천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때 최고의 블루칩으로 꼽히던 스위스에어는 프랑스 지부를 폐쇄할 지경에 이르렀다. 산업계 전반을 봐도 마찬가지다. 철강업계는 끝없는 구조조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 감소한 독일의 자동차매출은 회복할 조짐이 없다. 항공업계는 유가상승과 수요부진으로 허덕이고 있다. 충격받은 경제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은 성장예상치를 하향조정하는 데 바쁘다. 유럽중앙은행(ECB)마저 올해 성장전망치를 3.1%에서 2.5%로 낮추는 굴욕을 감수했다. 유로존에서 가장 큰 규모인 독일 경제의 경우 더 심각하다. 키엘 세계경제연구소(IFW)는 독일 경제의 성장전망을 당초 2.1%에서 1.3%로 크게 낮추면서 이 전망치를 달성해도 다행이라고 밝혔다. 독일 경제기술부 장관 베르너 뮐러는 "2분기에는 조금도 성장하지 않을 것같다"고 말했다. 독일은 노동시장 경직성, 유로화에 비해 고평가된 마르크 등 구조적인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 떠도는 '스태그플레이션' 망령 =노키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많은 첨단기술 기업들은 최근 주주들에게 더 많은 나쁜 소식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필립스전자는 반도체 매출 감소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메츠러 뱅크의 요하네스 라이히 수석연구원은 "마치 유럽에 신경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경기불황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유럽의 산업생산은 지난 3,4월 두달 연속으로 떨어졌다. CSF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줄리안 캘로는 "산업부문은 이미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반면 유로존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 상승, 지난 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최대 증가치를 기록했다. ECB의 한계 목표치인 2.0%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유로화 약세와 고유가 등으로 인한 물가상승은 일련의 감세로 인한 경기부양효과를 감소시키고 있다. ◇ 시험대에 오른 유로경제 =유럽발 악성 뉴스들의 물결은 유로경제가 과연 실물 유로화를 런칭시킬만큼 자체적으로 충분한 성장 동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의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CSFB의 캐로는 "유럽이 세계 경제 둔화를 완화시킬 수 있기는 커녕 오히려 세계 경기 흐름에 완전히 휩쓸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업체인 구치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 판매고가 5% 감소하자 휘청거리고 있다. 유로경제의 침울한 상황은 경제 및 화폐 통합이 세계 경제 둔화를 완화시키기에 충분한 규모로 산업 구조조정과 재정 개혁을 이루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확실히 유로화는 유럽 경제들을 하나로 묶어 놓기는 했다. 정부지출 및 재정적자를 엄격히 규제하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은 공공재정분야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유로는 아직 정치인들에게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사치스런 사회복지시스템을 개선하는 개혁조치들을 취하도록 힘쓰지는 못하고 있다. 몇몇 국가에서 비즈니스 환경은 오히려 악화됐다. 프랑스는 '1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 기업들의 노동비용을 증가시켰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개혁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네덜란드 경제는 3,4년전에 비해 훨씬 더 유연해졌다. 독일조차 지난해 감세와 연금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이런 점들이 유니레버의 피츠제럴드가 "유로존 경제가 변화하는 속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러나 유럽이 세계 경제의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해야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유로경제가 세계 성장의 기관차라고 자처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정리=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