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맹자(孟子) 첫머리 대목 얘기다. 그가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찾아 만났을 때 왕이 이렇게 물었다. "천리길도 마다 않고 오셨으니 역시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여 주시렵니까?" 맹자가 답하길 "하필 이익을 말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만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요긴할 뿐입니다" 백성을 인의로 다스려야 부모를 버리거나 임금을 따돌리는 사람이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용주의 입장을 설파하던 묵자(墨子)와 사뭇 다른 가르침이다. 그러나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당하지 않는 것,그것은 곧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 두 성현 말씀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며칠째 대중매체는 길수가족 관련기사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장길수군과 가족 친척 7명이 베이징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를 찾아가 난민지위를 부여해 한국행을 요구해 농성을 시작했다. 미첼 대표는 그들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을 생각이라 했다. 놀란 북한 대사가 왔다가 보도진 카메라 공세에 당황해 되돌아 갔다. 한국정부는 제 3국 추방후 입국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다.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들 얘기 듣기는 어제오늘이 아니다. 오래 전 김만철씨 가족 선상탈출을 비롯해 줄곧 들어오던 얘기지만,갈수록 사정이 긴박하게 들려 찡하게 가슴이 울려온다. 박충일은 "북한정권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속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다"고 절규한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를 찾아 생명을 건 모험을 마다하지 않게 만드는가? 두말할 나위없이 그것은 경제적 이익과 정신적 자유 때문이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지만,사람은 소득이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두 나라 사이에 소득과 기회의 격차가 존재하는 한,바다 강 철조망이 가로막아도 그 흐름을 억제할 수 없다. 격차의 크기가 이민 흐름의 유량을 결정한다. 유출국에서 밀어내는 요인,유입국에서 빨아들이는 요인 모두 중요하다. 한국을 떠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떠나는 사람들과 들어오는 사람들의 지식 정보 기술 등 생산성을 따져 보아야 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고급인력의 순손실을 보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인도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난민의 국내 영입은 '당연지사'다. 동족인 북한주민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뜻한 대접이 맹자가 말한 인의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우리는 양혜왕처럼 실용주의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북한 난민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남한의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탈북자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북한의 경제가 쪼들리고 정권의 주민탄압이 가혹하다는 살아있는 증거로서 가치가 있고,탈북자의 희망귀착지가 남한이라는 점이 우리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내의 결속을 다지는데 이바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정권의 충성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구가 몽땅 탈출,이주해 오기를 바라야 하는가.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바람직하지도 않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과 억압을 벗어난 삶과 자유를 누리는 것을 보는 것이,통일보다 앞선 우리의 소망이어야 한다. 이 소망을 가로막는 것이 그곳 정권이다. 서울은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서울방문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맹자와 혜왕이 서울에서 만나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치자. 기회효과가 인의여야 하나,실익이어야 하나. 지금 우리는 정신분열증에 걸려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중국 여러 곳에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의 생사에 관심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을 고향에서 몰아낸 정권의 수반을 기다리고 있다. 군비축소,평화협정,왕래자유 등 보따리 지참 없는 서울방문은 무의미,무가치하다. 한자풀이 놀이에서 흔히 의(義)자가 이렇게 풀이된다. 내(我) 양(羊)을 내가 차지하는 것이 자연의 도리이며 옳은 일이라는 뜻이란다. 대북 관계에서 우리가 흔히 망각하고 있는 점이 바로 실용주의 정신이다. 북한관점에서 보수ㆍ진실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이점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온갖 난관을 무릅쓴 탈북자,오늘도 그들이 오고 있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