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대표적인 보수우익 인사로 평생 "반공외길"을 걸어온 오제도 변호사가 1일 새벽 서울 중앙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평안남도 안주 출신으로 평안중학과 일본 와세다대 법학과를 졸업한 오 변호사는 지난 46년 판검사 특별임용시험에 합격,서울지검 검사로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인은 이승만 정권시절인 56년 "진보당 사건" 당시 조봉암 진보당 당수의 사형선고를 이끌어내는 등 50년대 "반공검사"로도 명성을 떨쳤다. 60년대 들어 고인은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신의주학생의거기념회장과 한국반공연맹이사, 북한탈출동포돕기운동본부 부회장 등을 지냈고 무궁화회 회장과 월간 "사상21세기"의 회장을 맡았다. 97년에는 "한국통신 노조농성에 불순세력이 개입했다"는 발언으로 법정에 서게 된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을 위해 원로변호사들과 함께 무료변론에 나섰으며 "북풍사건"때는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변론을 맡았다. 또 98년에는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와 의형제를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한석주씨와 3남3녀. 빈소는 서울중앙병원 영안실 30호(3010-2270,2370)이며 발인은 5일 오전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