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인 1999년 여름 시중은행들은 희색이 만면했다. 해태제과 동아건설 아남반도체 고합 남광토건 등 출자전환 기업들의 주가가 전환 가격을 넘어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 상승에 대한 기대감과 맞물려 해태제과는 2만원선을 넘어섰고 액면가에 전환된 동아건설의 경우 1만3천원대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채권단 보유지분의 매각제한 해제가 본격화된 작년 이후 주가는 죽을 쑤기 시작했다. 해태제과는 채권단의 매각이 본격화된 올들어 1천원 밑으로 급락했고 동아건설은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한때 액면가를 웃돌았던 우방 남광토건 등도 지금은 1천원대 안팎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 은행들의 고민 =조흥은행 남택봉 차장은 "출자 주식의 등락이 자기자본 계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할 때는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1만3천원대에 전환시킨 해태제과 주식을 연초 1천3백원대에 처분, 겨우 10%의 원금만 건졌다"고 말했다. 특히 주식보유 지분이 3%를 넘어가면 지분법 평가까지 은행 당기손익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은행들이 '출자전환'으로 얻게 된 '원치 않은 자식들(자회사)'로 인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출자전환 대상 기업이 출자전환 등 채무 재조정을 받고도 영업이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거나 처음부터 무리한 출자를 단행했을 경우 앞으로도 좋아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해당 은행들의 속앓이는 극심하다. 정성국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대우건설에 대한 채권단의 6백60억원 출자전환과 관련, "출자전환으로 금융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는 있지만 영업실적 회복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출자전환이 당초 기도했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또 주택은행은 대한주택보증의 순자산 가치를 액면가의 20%, 한미은행은 제로로 자체 평가했다. 두 은행의 손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도 대한주택보증 주식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실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담보채권자의 경우 담보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과 부실 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게 되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채권은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출자전환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보증보험의 김종혁 기업개선팀장은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 금융기관들은 주식보다는 차라리 CB(전환사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매각 서둘러야 =출자전환의 목적은 '은행 관리'가 아니라 조속한 제3자 매각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하고 투자 지분을 회수하는데 있다. 하지만 상장 기업의 30% 가량이 관리종목에 들어가 있고 기업 매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인 찾기'란 쉽지 않다. 금융연구원 김병연 연구위원은 "채권단은 출자전환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매각이 늦어질수록 출자전환 주식은 은행 부실로 고스란히 전가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소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M&A를 서두르는 것이 조기 매각의 돌파구"라고 충고했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수많은 채권금융기관들의 의견을 원만하게 조율하는 한편 부실기업 인수에 따른 각종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