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강세가 촉발한 물량 공급의 파상공세가 의외로 깊은 환율 하락을 이끌었다. 달러/엔 환율의 125엔 돌파가 좌절된 뒤 시장심리가 방향을 180도 바꾸었다. 엔화보다는 수급쪽에 무게중심이 쏠린 셈.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8.70원 낮은 1,292.3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달 20일 10원이 하락한 이래 가장 큰 낙폭이다. 개장초 달러/엔 환율의 123엔대 진입을 빌미로 하락세로 출발한 환율은 달러/엔의 반등이 어렵다는 시각이 팽배하자 보유물량의 처분이 급격히 이뤄졌고 이월 네고물량이 하락을 도왔다. 최근 납입된 한국통신 주식예탁증서(DR)발행 관련 자금 유입 등의 이야기도 시장에 나돌았으나 큰 부담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물량부담에도 불구, 쉽게 하락의 늪으로 빠지지 않던 환율이 뒤늦게 엔화의 도움을 받아 아래쪽으로 간 것으로 풀이된다. 달러/엔이 125엔을 넘어선다는 견해로 굳어진 사자(롱)마인드가 달러/엔의 방향전환에 쉽게 허물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박스권 장세는 유효하며 쉽게 사자(롱)플레이나 팔자(숏)플레이에 치우칠 만한 재료나 요인은 없는 상태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월말 물량부담에도 의외로 빠지지 않았던 것이 이틀 지나 나타났다"며 "과다하게 빠진 면이 없잖아 있으나 달러/엔이 122엔까지 조정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 사자(롱)마인드가 위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밤새 달러/엔도 휴일을 앞두고 큰 폭의 이동은 없을 것으로 보여 어느정도 조정이 좀 더 진행될 것"이라며 1,290원은 지켜지는 가운데 1,296∼1,297원까지 오를 수 있는 박스권을 예상했다. ◆ 엔화 조정 시각 우세 = 최근 125엔 상향돌파에 연거푸 실패한 달러/엔 환율로 인해 국내 거래자들이 달러/엔 반등을 기대하며 유지하던 달러매수초과(롱)포지션을 적극적으로 정리했다. 달러/엔은 최근 거래자들이 가지고 있던 롱포지션을 털어냈으며 이날 123엔대에서 주로 거래됐다. 최근 '이벤트'로 간주되던 미·일 정상회담과 단기경기관측(단칸)지수 발표가 끝난 직후 시장심리가 125엔을 돌파를 예상하던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전날 일본은행(BOJ)에서 발표한 단기경기관측(단칸)지수가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는 인식으로 뉴욕장에서 달러/엔은 124.29엔에 마감했으며 고이즈미 총리가 "의도적인 엔화 약세 유도는 없다"는 발언으로 하락세를 부추겼다. 오전중 달러/엔은 123.60엔대까지 밀리기도 했으나 주로 123.80∼123.90엔에서 거래됐다. 나카가와 BOJ 전 총재의 "하야미 총재가 점진적인 엔화약세를 용인할 것"이라는 발언이 달러/엔의 낙폭을 줄이기도 했다. 3일 뉴욕장은 4일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오전장만 열려 달러/엔은 진폭이 좁은 상황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달러/엔이 124엔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달러/원의 추가하락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오전장만 해도 수급은 이월 네고물량과 외국인 직접투자(FDI)자금 등의 공급과 저가 결제수요가 함께 공존한 반면 오후 들어서는 일방적으로 공급이 우세했다. 이월 달러매수초과(롱) 상태인 대부분 거래자들이 보유물량 처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역외세력은 뚜렷한 방향성없이 사고파는 거래를 이었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환율은 전날보다 2원 낮은 1,299원으로 출발했다. 123엔대로 내려선 달러/원 환율을 반영한 결과. 개장 직후 환율은 낙폭을 키우며 1,296.10원까지 가라앉은 뒤 저가매수와 은행권의 달러되사기로 1,297.60원까지 반등하기도 했으나 이내 1,296원선을 주로 배회하며 1,296.40원에 오전 거래를 마쳤다. 오전 마감가보다 0.10원 낮은 1,296.30원에 거래를 재개한 환율은 엔 약세와 물량 부담을 안고 손쉽게 하향 행진을 거듭했다. 저점 경신에 나서면서 1,292.20원까지 저점을 내린 뒤 소폭 되올라 1,292원선을 횡보하며 마감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은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40억원, 13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최근 사흘 내리 사는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으나 규모가 크지 않아 환율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중 고점은 개장가인 1,299원, 저점은 1,292.20원으로 하루 등락폭은 6.80원이었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26억9,87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11억3,760만달러를 기록했다. 스왑은 각각 6억4,860만달러, 4억2,240만달러가 거래됐다. 4일 기준환율은 1,295.30원으로 고시된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