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콜금리 인하] 물가냐..景氣냐..'마라톤 격론' .. 市場 반응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두시간 20분의 격론, 정회(停會), 50분만에 속개, 긴장 속의 표결, 4대 3의 팽팽한 균형'
5일 금융통화위원회가 사상 유례 없는 난상토론 끝에 콜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기까지의 과정이다.
한은은 금리 인하에 대해 '위험 부담을 안고 불가피하게 내렸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부양 효과가 미미하고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고 비판한다.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미 시장 금리에 반영돼 금리 인하보다 이달말 발표될 생산 수출 물가 등 경제지표에 관심이 더 쏠리고 있다.
금리 인하가 자금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신용경색을 예방할지 아니면 초저금리 시대에 부작용만 양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유례없는 격론 =금통위가 콜금리를 결정하면서 두시간여 난상토론을 벌이고 이견 조율을 위해 정회까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철환 한은 총재와 금통위원 6명의 표결 결과는 4대 3이었다.
금리 인하를 지지한 전 총재 외엔 금통위원들이 반반으로 갈렸다는 얘기다.
금통위는 이날 오전 9시30분에 시작돼 오전 11시52분 정회를 선언했다.
금통위원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점심을 걸러가며 막판 조정에 들어가 낮 12시50분께 가까스로 표결을 실시했다.
전 총재는 '인하시기 문제 때문에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7월이냐 8월이냐를 놓고 의사록에 남기지 않는 막판 격론 끝에 '이달'을 선택한 것이다.
◇ 신용경색 방지가 급했다 =한은의 금리인하 명분은 수출 생산 투자 등 실물경기 부진이다.
넉달째의 수출 급감, 3개월째인 생산증가율 하락, 미국 경기회복 지연 등이다.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도 심각한 경기불안 요인이다.
물가안정 포기로 비쳐지는 위험 부담에도 불구, 금리를 내린 명목상의 이유들이다.
실제로 기업의 1.4분기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3.3%(전년동기 6.7%)로 악화됐고 2.4분기에도 저조한 실정이다.
그러나 기업 수익 악화가 주가 하락 및 신용위험 증대를 가져와 하반기에 집중 돌아오는 투기등급 회사채(8조∼13조원)가 소화되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 한은의 속내 고민이다.
이번 금리 인하로 은행 대출 금리가 하락하고 투신사 등 2금융권 고수익 상품에 돈이 몰려 채권 매수 여력을 키울 수 있다면 이는 다행스런 시나리오다.
강형문 한은 부총재보는 "자금 시장의 선순환 고리를 되찾아 신용경색 재발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부양효과엔 '갸우뚱'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4.4분기에 경기가 회복된다고 보면 현재가 금리 인하의 적기"라며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상무는 "경기가 나쁜 것은 구조조정이 부진하기 때문이지 금리가 높아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금융당국이 물가를 포기하고 경기 부양으로 기울었다는 신호로 해석돼 인플레 기대(물가 오름세) 심리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초저금리가 2년여동안 지속되면서 부동산 시장은 비수기임에도 꿈틀대고 있다.
이미 명퇴자 등 이자 생활자들은 낮은 예금 이자로 고통받고 있다.
고물가(4.4% 전망)에다 저금리 정책으로 빚어지는 폐해들이다.
◇ 정부.시장 압력에 굴복 =한은은 그동안 금리 정책의 파급 경로상 금리 인하는 부양 효과가 없음을 강조해왔다.
전 총재도 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진작 효과가 크지 않다고 시인했다.
그럼에도 한은이 내리는 쪽으로 급커브를 튼 것은 정부와 금융시장의 압력 탓으로 여겨진다.
외면했다간 경기 부진의 책임까지 뒤집어쓸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매달 금리를 내리다시피 한 미국 등의 국제적인 금리인하 추세도 한은으로서는 외면하기 어려웠다.
일각에선 정책 수단을 곶감 빼먹듯 다 빼먹은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