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같이 그랬다. 눈처럼 흰 피부,앵두처럼 붉은 입술,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가진 "백설공주"도,예쁜 죄로 마녀의 미움을 사 백년동안 잠들었던 "숲속의 잠자던 공주"도,하룻밤 "땐스"로 왕자를 홀린 "신데렐라"도. 동화속 공주들은 하나같이 미모가 하늘을 찔렀고 하나같이 백마탄 잘생긴 왕자를 만났으며 하나같이 결혼해서 오래도록 잘 살았다. 드물게 "야수"였던 왕자도 끝내는 눈이 번쩍 뜨일 꽃미남으로 변해 예쁜 처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그 어느책도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는 결혼후의 권태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고,선남선녀보다 압도적으로 수가 많은 "일반인"-못생기고,뚱뚱하고,다리가 짧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일언반구가 없었다. 드림웍스 3D애니메이션 "슈렉"(원제 Shrek.7일개봉)은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적 환상"을 통쾌하게 뒤집는 "21세기형 동화"다. 기둥 줄거리는 따돌림받던 녹색괴물 슈렉이 천방지축 수다쟁이 당나귀와 함께 성에 감금된 공주 피오나를 구한후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 영웅이 공주를 구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얼개는 다를바 없다. 하지만 현실에 한발짝 다가선 캐릭터와 예상을 여지없이 뛰어넘는 이야기 전개는 깜짝 놀랄만큼 신선한 재미를 준다. 첫장면,화장실에 앉아 동화책을 넘기던 녹색괴물 슈렉이 "오래오래.."란 마지막 책장을 찢어 뒤를 닦으면서 "전형"을 겨냥한 도발은 시작된다. 공주를 구하는 이 "영웅"은 못나고 지저분하고 무례하기 짝이없는 괴물이며,성안에 갖힌 공주는 우아하고 조신한 대신 "날라 양발차기"로 적들을 물리치는 "터프걸"이다. 그 뿐이 아니다. 들쥐바베큐를 거뜬히 해치우고 "거미줄 솜사탕"이나 "개구리 풍선"을 만들어 내미는 엽기행각을 서슴치 않는 공주는 밤만되면 들창코에 엉덩이가 펑퍼짐한 못난이로 변한다. 왕이 될 욕심에 공주와 결혼하려는 영주 파콰드는 또 보기드문 폭군에 다리짧은 땅딸보다.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캐릭터를 내세워 출발한 "슈렉"은 이윽고 기발하고 유쾌한 웃음의 세계로 관객들을 몰고간다. "매트릭스""미녀삼총사"등을 본딴 재치있는 패러디와,배꼽을 쥐게 하는 "엽기"공세와,디즈니 만화를 비틀어대는 깜찍한 조롱과,신나는 록음악과,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을 빌린 화려한 춤은 관객에게 쉴새없는 즐거움을 안긴다. 포복절도할 유머속에는 왜곡된 가치관에 대한 사뭇 진지한 문제제기도 들어있다. 흉한 외모속에 빛나는 심성을 품고 있는 슈렉으로 외모제일주의에 일침을 가하고,무술에 능한 공주로 수동성을 벗어던진 현대적 여성상을 제시한다. 일류배우들의 맛깔난 목소리 연기도 재미를 배가시킨다. 능청스런 슈렉은 "오스틴 파워"의 코미디 배우 마크 마이어스가,속사포같은 수다를 늘어놓는 당나귀는 에디 머피가,피오나 공주는 카메론 디아즈가 맡았다. 기술진화도 놀랍다. 실제 배우뺨치는 풍부한 표정,바람에 살랑살랑 날리는 털등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화면은 실사영화에 버금갈 정도로 자연스럽다. 올 칸느영화제는 슈렉을 애니메이션 28년만에 두번째로,할리우드 애니메이션으로는 50년만에 처음으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해 "진가"를 인정했다. 뭐니뭐니해도 슈렉의 가장 큰 매력은 남녀노소 누구나 진심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 아이들은 신나는 장면장면에서 박수를 칠 만 하고,어른들은 화면 아래 깔린 풍부한 은유와 발랄한 스토리에 무릎을 칠 만 하다. 요즘아이들 말을 빌자면 "뒤집어지도록"재미있는,올 여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로 단연 1번이다. 전체관람가.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