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세 금융상품의 남발로 조세체제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많다. 비과세 상품은 정부가 채권시장 육성 등을 명분으로 급조한 '땜질식'이 대부분으로 공평과세를 저해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달 초부터 투기등급(신용평가등급 BB+이하) 회사채의 매수 기반 조성을 겨냥, 금융회사들에 새로 허용한 비과세 고수익채권펀드가 대표적인 예다. 이 상품은 말이 '고수익'이지 고위험의 부실기업 채권을 사들일 신규 수요를 이끌어 내기 위한 편법 상품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올 연말까지 1인당 3천만원까지 비과세키로 한 근로자주식저축 상품도 다분히 '주가 떠받치기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정부는 이밖에도 장기주택저축 근로자우대저축 비과세증권신탁 개인연금저축 생계형저축 농어가목돈마련저축 등 10가지의 비과세 상품을 허용, 금융회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4인가족의 가정이 비과세상품만 골라 예치할 경우 약 2억원 가량의 금융자산을 세금 한푼 내지 않은채 굴릴 수 있게 됐다. 이자소득세가 감면되는 세금우대상품까지 합치면 '조세 특권'의 폭이 이보다 훨씬 커진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들 비과세 상품중 상당수가 경제 논리보다는 채권시장 지원 등 '정책적 고려'에 의해 남발되고 있어 △금융시장 왜곡 △과세형평 위배 등 겹겹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과세 고수익채권펀드의 경우 신용도가 낮아 투자 부적격으로 판정된 기업들의 채권이 최근 1년여 사이에 거의 거래가 안 이뤄지자 금융당국이 서둘러 도입했다. 정부는 이들 채권이 하반기 이후에도 매매가 되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 비과세라는 '당의정'으로 포장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과세증권신탁의 경우도 경영난에 빠진 증권사와 투신사들의 '회생 지원용'으로 편법 개발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우체국 신협 새마을금고 보험 등에 허용된 장기저축성보험은 금융권역별로 균형을 맞추어 준다는 이유로, 농협 단위조합이 판매중인 농어가목돈마련저축과 신협의 예탁금이나 금고의 출자금은 서민금융 지원이란 명목으로 개발되는 등 비과세상품의 허용논리도 다양하다. 이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요즘 서민금융 활성화를 내세워 "금고에도 2천만원 이하의 저축에 대해서는 비과세해 줘야 한다"며 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이같은 비과세 상품 남발로 인해 '소득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민주주의의 대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의 김선택 회장은 "불입액의 5%를 미리 세액공제해 주는 근로자주식저축의 경우 헌법에 보장된 조세형평주의에 정면 위배되는 대표적인 정책"이라며 "특정인이나 특정계층에 대해 면세나 감세 혜택을 줄 경우 다른 납세자가 그에 따른 세금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들 비과세 상품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의 세금만 줄여 주는 측면이 있다는 것. 국세청 관계자는 "세제 담당부서가 금융정책관련 부서에 밀리는 탓에 비과세 상품 남발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비과세라는 감초를 넣지 않으면 아예 약발이 듣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