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9일 `역사관의 차이에 따른 기술은 무죄'라는 취지로 역사왜곡 파문을 일으켜 온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역사학자 등이 참여해 작성한 최소한의 재수정 요구를 `눈에는 눈' 식으로 자국 역사학자들을 동원, 이른바 `정밀조사'를 벌인 끝에 재수정 불가(不可)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이처럼 한국의 요구를 무시한 것과는 달리 일본 국내의 의식있는 지식인과 학자들은 `새 교과서...모임' 교과서가 학교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은 위험하다며 내부적으로 경고음을 내고 있다. 일본의 식자층은 역사왜곡 파문의 불을 댕긴 `새 교과서...모임'측 교과서의 위험성을 크게 3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문제의 교과서가 학교현장에서 사용될 경우, 교실내 민족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운노 후쿠주(海野福壽) 전 메이지(明治)대 교수 같은 사람은 "문제의 교과서가 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되면 재일 한국인과 중국인 학생들이 같은 반 일본학생들로부터 민족차별을 받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새 교과서...모임'측 교과서는 일본 학생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명분 아래 `일본인은 우수하고, 한국인과 중국인은 열등하다'는 사고를 주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로 일본인의 역사관이 사실상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일본의 고교생들은 대학입시에서 일본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세계사 시험을 보려는 추세가 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학에 가서도 일본 학생들이 일본사를 배우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본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중학교 시절 밖에는 없는 셈이 된다. 이런 점에서 중학교 역사교육은 중요하며, 따라서 자의적인 해석으로 전쟁을 미화하고 침략사실을 축소한 역사교과서가 중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마지막으로 큰 논란을 빚은 `새 교과서...모임'의 교과서가 상당수준으로 학교현장을 침투하게 된다면 내년으로 예정된 고교 교과서 검정신청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것이라는 우려이다. 실제로 이번에 `새 교과서...모임' 교과서의 등장으로 지난 97년판 교과서에서 군위안부 사실을 다뤘던 7개 기존 교과서가 일제히 위안부 관련기술을 삭제하거나 축소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본의 고교 교과서 26종 가운데 25종이 위안부 문제를 기술하고 있으나, 내년 검정신청 때 이들 교과서들이 위안부 문제를 삭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고이즈미 정권이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강행 등 우경노선을 걷고 있음에도 엄청난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내년 고교 검정신청은 또 한번 역사왜곡 파문을 일으킬 소지가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일본 정부가 끝까지 우익교과서를 감싸고 돈 태도는 일본의 미래를 담보로 해서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려 한 행위로 `치욕의 역사'에 벽돌을 한 장 더 얹어놓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도쿄=연합뉴스) 고승일특파원 ksi@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