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택선의 '경제 다이제스트'] '신용정보 부족땐 자금순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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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경쟁 시장에서는 모든 수요자와 공급자가 시장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갖는다고 가정한다.
누가 어떤 질의 상품을 어디서 얼마에 파는지, 또는 사려고 하는지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다는 가정이다.
물론 이론을 구성하기 위한 가정일 뿐이다.
현실 경제에서는 이같은 가정이 거래 당사자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바뀐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중 어느 한 쪽이 그 물건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이른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역선택은 상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상품을 거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중고차 시장에서 차의 외양만으로 그 속내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 비싼 돈을 내고 우량 중고차를 사려다가 속아서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다소 질이 떨어지는 차를 싼 값에 산다는 것이다.
차를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은 차를 사고 싶지만 사려는 차에 대해서 파는 사람에 비해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차를 사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이같은 예는 무수히 많다.
최근에는 은행의 대출이나 신규 은행에 대한 진입장벽 등과 관련해 금융업에서 나타나는 역선택 현상에 대해서도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은행 대출에 있어서는 시중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을 때 역선택 현상이 나타난다.
시중에서 자금난이 발생하면 기업들은 은행에 몰려가 돈을 빌리려 할 것이고 자금수요가 많아지면 금리가 오르게 된다.
그러나 내용이 좋은 기업들은 금리가 오르면 돈을 빌리려 하지 않을 것이고,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받으려는 기업은 아무래도 사정이 급한 회사들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은 내용이 좋은 기업보다는 사정이 어려운 기업들을 상대로 대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은행들은 이같은 사정을 알기 때문에 자금난으로 은행을 찾아오는 기업들에 대해 대출을 꺼리거나 대출을 제한하게 된다.
은행권에 돈이 몰려도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여전히 많다는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금년 들어 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은 줄인 반면 가계대출은 크게 늘렸다고 한다.
유수의 대기업들로부터도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속속 생겨나는 상황이니 상대적으로 안전한 가계를 상대로 영업을 하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금융업 전반의 체질 개선보다는 손쉬운 장사를 택하는 게 아닌가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다.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maincc.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