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보기술과 경제적 불평등..주우진 <서울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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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은 고객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카드회사의 포인트 적립제도와 항공사의 마일리지 적립제도가 그런 것이다.
성장시장에서는 신규 고객을 넓게 확보하는 '수렵형' 마케팅을 해야 하지만,성숙시장에서는 기존 고객을 잘 관리하는 '경작형' 마케팅이 더 중요하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작형' 마케팅이 더욱 중요해 질 수밖에 없으며,이를 지원하는 여러 경영기법을 개발했다.
이러한 경영기법을 고객관계관리 또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라고 하는데 이 기법의 요체는 고객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표적 마케팅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CRM의 유용성을 날로 높이고 있지만,고객을 '차별대우'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이 있음도 고려해야 할 측면이다.
한 예로 많은 기업들이 CRM을 활용해 자신의 고객을 우량고객 보통고객 불량고객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량고객에게는 갖가지 혜택을 주며,보통고객에게는 제한된 혜택만,그리고 불량고객에게는 아무런 서비스도 하지 않아 스스로 고객 대열에서 탈락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욱 불쾌한 것은 소비자와 회사종업원이 얼굴을 맞대거나 전화상으로 만나는 '고객접점'에서 회사종업원의 컴퓨터 화면에 그 소비자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뜬다는 사실이다.
즉 그 소비자가 얼마나 그 회사 제품을 구입한 고객인지,현재 재구매할 확률이 높은 고객인지,과거에 대금을 연체한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종업원에게 제공돼 종업원으로 하여금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는 것이다.
과거 정보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고객은 '다 같은 고객'이었는데,오늘날에는 우량 보통 불량이라는 낙인이 찍혀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발달로 경제적 불평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소비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가치가 돈으로만 환산되는 왜곡된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어떤 사람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출세할 수는 없게 돼 있다.
어떤 사람은 정보화를 저지해야 한다는 '신(新) 러다이트(Neo-Luddite)'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유포시키는 사람 중에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위의 두가지 대응은 모두 부적절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약육강식의 논리는 오늘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방치하기엔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할 것이며,'신 러다이트'운동은 과거의 '러다이트'운동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우리는 부족하나마 정책과 연구 및 교육으로써 이 문제를 풀어 나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선 정책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차원의 소비자보호법이 제정돼야 한다.
기존의 소비자보호법이 아날로그시대를 위한 것이었다면,새로운 소비자보호법은 디지털시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즉 기업이 소비자 정보를 수집하고,배포하고, 사용하는 데 있어서 엄격한 스탠더드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연구 및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의 소외에 대한 연구가 노동자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정부 정책에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듯이 정보화사회에 대한 사회학·인문학 연구가 소비자의 주권을 향상시키는데 유사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기술에 대한 발전에 상응하는 사회학·인문학 연구가 병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오히려 기술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기업의 마케팅 효율성을 높여 우리의 경제를 더욱 발전시킬 터이지만,여기에서 오는 부작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정부와 학계의 노력이 계속돼야 우리가 정보기술의 이기를 제대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wchu@car123.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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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